아래 물뚱흉의 오도-_-바이 사고아닌 사고 얘기를 읽다가
문득 그 글에는 치명;적인 오류가 있어서 반-_-론을 펼쳐본다.
그 글에서 물뚱흉은 당시 최고의 오도바이를 시티 100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당시 오도바이의 최고봉은 당근 대림 88 이었다.
무..물론 시티100이 88오도바이의 후속작으로써 히트를 치기는 했으나,
88오도바이의 인기에 비하면 암것도 아니었다.
그리고 당시에는 88과 시티 100이 공존하는 시대였다.
본 필자;도 방학때는 어김없이 외갓집에 얹혀사는 신세로써
가끔 외할아버지가 읍내에 막걸리 드시러갔을때 몰래 타고 나가곤 했는데,
항상 동네 형;들이 모이는 장소가 있었다.
모이는 장소는 ...뚝방이지뭐-_-;
당시 뚝방에 모인 오도바이들을 보면 내 기억으로는 70%가
대림 88이었다.
시티 100은 촌에 사는 사람들을 위한 오도바이가 아니라,
시티. 즉 도시에 사는 사람들을 위한 오도바이라고 열띤;토론을 했던 기억도 난다.
그리고 결정적으로다가
어느 그룹이든 대빵의 말이 진-_-리.
뚝방에 모인 동네형;들 중에서 가장 침;좀 멀리 뱉는다는 형이 말씀하시길,
"시티 그건 오도바이도 아냐~ 88이 갑이야~ 왜 담배도 88이 짱이겠냐?"
"시티 타는 니네들 저리가. 냄새나. 훠어이~"
-_-;;;;
-_-;;;
끝으로...물뚱흉이 그 사고에서 털끗;하나 다치지 않고 살아났다는 마지막 부분에서..
진한 아쉬움을 감출수가 없는 바이다.
-끗-
2012년 6월 2일 토요일
오토바이 사고
나 어릴때, 아부지가 은퇴하시고 시골에 내려가 농사를 지으시는 바람에, 방학만 되면 시골가서 농사짓고 살았다.
요즘도 도시에서 배달용으로 흔히 쓰이는 씨티100은 당시 농촌에서 가장 중요한 이동수단 중의 하나여서 거의 집집마다 한대씩 있었고, 그 성능 또한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명품이었다고 할 수있다.
![]() |
| <위대할 손, 씨티백의 자태여~ > |
그 씨티100 타고 오토바이를 배우고, 나중에는 서울에 와서도 슬금슬금 125cc 오토바이에 맛을 들이고, 그 뒤로는 면허도 없이 간크게 가와사키 쉐도우 같은거 막 얻어타고 그러던 시절이 있었는데..
하루는 시골 한적한 지방도에서 시티100을 타고 가다가 막 흥이 나면서 땡기기 시작을 했는데, 평소 같으면 속도 줄이고 돌았을 커브를 웬지 더 빠르게 돌 수 있을 것 같은 착각이 들면서, 꼴에 또 온갖 개폼을 잡으면서 린-인 자세로 코너링을 시도했는데..
뭐 뻔하게 다음 순간 길 가장자리로 쭈르륵 밀려나가면서 불쌍한 씨티100은 데굴데굴 구르기 시작했고, 난 한순간 몸이 붕 뜨면서 유체이탈 한거마냥, 굴러가는 오토바이가 저 아래로 내려다 보이더라고.
헬멧도 안 쓰고 있었는데.. 순간, 아.. 나 죽나 보다, 이렇게 죽으면 아부지한테 졸라 혼날텐데~ 라는 말도 안되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
다음 순간 까맣게 기억이 안난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는지 눈을 떠보니, 하늘이 파랗게 올려다 보인다. 아주 편한 자세로 대짜로 누워 있었는데, 움직여 보니 신묘하게도 다친데가 하나도 없다. 그냥 옷이 좀 찢어지고 여기저기 멍좀 든거 말고는 피한방울 흘리질 않은 거다. 그냥 전체가 다 타박상.
대략 유추해 보건데, 오토바이가 구르기 시작하면서 난 휙~ 날아갔고, 마침 떨어지는 자리가 시골 지방도 옆에 풀이 무성하게 우거진 골창을 떨어진 거다. 골창이 형태도 완만하게 부드러웠고, 풀들이 완충작용을 해 줘서 그런지 충격으로 몇초간 정신을 잃었을 정도인데도 불구하고 어디 하나 부러진 데도 없이 멀쩡.
불쌍한 씨티백은 저쯤 처박혀 있는데, 여기저기 기스나고 백밀러 깨지고 하는 정도 뿐, 다시 일으켜 세워서 시동 걸어보니 잘 걸린다.
와우~ 이게 웬 땡.
역시 하늘이 보살피는 인재는 다르다. 갈빗대 두어개 나가는 건 기본인 오토바이 사고가 났는데도 이렇게 멀쩡하다니. 뭔가 특권의식이 생겼다.
* 마지막 줄이 썩개라고 우겨봄.
2012년 6월 1일 금요일
예전 얘기
전에.. 애들 시절에 있던 일이다.
자취하던 시절에는 가끔은 순수하게 고기가 먹고 싶어질 때가 있다. 그 날도 마침 알바 월급 탄 날이라, 신촌에 있던 허름한 갈비집에 가서 혼자 돼지갈비 이인분 시켜놓고 먹고 있는데, 특이하게도 옆자리에 젊은 여성이 혼자서 삼겹살을 잔뜩 시켜놓고 궈먹고 있는게 아닌가.
<본 사진은 기사 내용과 전혀 상관 없을걸~>
뭐 별다른 흑심은 없었지만 그래도 궁금해서 힐끔힐끔 쳐다보는데 그녀도 나를 쳐다보다가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그래서 웃으면서 말을 건네고, 그녀 식탁으로 자리를 옮겨서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는데, 뭔가 사연이 있는 분위기.
그래도 차마 직접적으로 물어 보지는 못하고 잡담만 하고 있는데, 갑자기 그녀가 가봐야겠다고 벌떡 일어서서 나가 버리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 기회를 놓칠수 없다 싶어서 결연한 의지로...
그녀가 남기고 간 고기를 다 먹었다. 행복했다.
홍-_-익-_-썩-_-개
홍익인간 [弘益人間] : 인간을 널리 이롭게 한다는 뜻
홍-_-익-_-썩-_-개 : 썩개세상을 널리 이롭게 한다는 뜻
이를 몸소 실천한 자 있었으니, 추측하건데 수필휘지 되시겠다-_-
네이버에서 "썩개"로 검색을 하면 다음과 같은 화면이 뜬다.
두둥~ 보이시능가?
첫번째 검색결과 -_- "딴지 썩개.hwp" 라는-_- 저 홍익썩개스러운 글자가-_-
해당 파일은
딴지 썩개(썩은개그)선수들의 썩개 타율 계산기
라는 갱쟝히 잉여로운 -_- 내용의 문서이다-_-
이는 널리 썩개정신을 알리기 위한 수필휘지횽의 뻘-_-짓으로 그 잉여로움에 찬-_-사를 보낸댜.
당신의 뇌는 행복하십니까?
오늘도 주린;배를 움켜쥐고 회사식당에 갔더니 저런게 붙어있더라.
"당신의 뇌는 행복하십니까?"
음...음...음...-_-;
글고 보니 나으 뇌가 행복한지 불행한지 그것도 아니면 햄뽁-_-았는지
한번도 생각해본적이 없었다.
나으 뇌가 나를 지배하고 있는것인지,
내가 뇌를 지배하고 있는것인지......
전자라면 내가 행복한지 안한지 저 뇌;한테 물어봐야 할것이고,
후자라면 신라면....흠.
후자라면......
뭐 내몸이 붙어있는 지가 행복한지 안한지 관심읎다.
더군다나 저 글처럼 뇌;따위를 행복하게 해줄려고 블루-_-베리라는 욜라
부르주아 스러운 과일을 먹어줘야 한다니 더더욱 거부감이 든다.
블루베리 하니까 느닷엄씨 예전에 마트에 갔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불한당: 자갸 우리 블루베리 하나 먹자.
불한당이랑 같이 가신분: 이게 미쳤나. 저게 얼만지 알아? 걍 사과나 담어.
불한당: 네.......-_-;;;
흠.
갑자기 왜 눙;물이....ㅜㅠ
대충 생각나는데로 쓰다보니 어케 결론을 내야할지 몰겠다.
여튼......
"당신으 뇌는 행복하십니까?'
-끗-
시인이 되는 거다
며칠 전에 왠 서면 인터뷰라는 것을 했단 말이지.
서면인터뷰라는게 꼭 뭐 가카나 상득이흉 정도의 레베루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더라구;;험험;;하튼 머;;
그 인터뷰 항목중에 "당신의 직업에 만족하십니까?"
뭐 이런 질문이 낑궈 있었슴.
이 상투적인 질문을 보는 순간 아주 먼 기억으로 빽.
"시인이 되고 싶었다."
국민학교 4학년? 6학년? 잘 기억은 안남.
그 겨울방학 숙제중에 지랄 같은 같은 반 후렌드들 숫자만큼 -무려 60명이다-
동시를 지어서 그림을 그리고 60장을-무려 60장이다-똑같이 만들어 오라는 거야.
오해는 하지 마.
당시에는 노떼캐논도 없고 프린터, 컴퓨터도 없었지.
순수가내수공업 수준의, 70년대 어두운 백열등 밑에서 민중해방을 위해
찌라시를 등사하는 심정으로 그렇게 그렇게 60장 도화지를 메꿔가는 거였어.
잠시 복기해보자. 잘 될까 모르겠다.
자 대략 이런 시였던 것으로 기억난다.
어디서 배꼈는지 창작인지는 모른다.
중요한 것은 60장이라는 과도한 업무량의 효율적 처리를 위하여
짧고 굵게 대량생산 대량처리가 가능한 능률적 시와 그림
남들이 겨울 내내 애들 답지 않는
사랑과 자연과 부모님에 대한 은혜로 60장을 그려왔을 때
극도의 리얼리즘을 실현한 이 짧은 시 하나로
칭찬을 받고 말았다는 것.
'참 순수하구나.'
그 순간 나의 꿈은
시인이 되는 거다.
푸르른 하늘을 보고
그 푸름을 바늘로 뽁 찌르면
푸른 눈물 한 방울 푹 떨어질
감수성을 쌓아야 했지.
노력 따위는 없다.
시인은 타고 나는 것.
그렇게 그렇게 수 십년이 흐르고
그 얼척없던 내 엄청난 재능은
이렇게 이렇게 변질 되어왔고
다시 변질 되어 가고 있다.
하지만 나에게 드립은 시다.
그리고 나이 40넘게 처 드시고
마눌도 비웃고 트친도 비웃고
스스로 부끄러워 오프에서는 공개 못하는
또 다시 시라쓰고 남들은 썩개라 비웃는
꿈을 시작하려 한다.
그때 내 담임 선생님 이름이
백열등처럼 번뜩인다.
오*자 선생님.
지옥이나 가시라.
서면인터뷰라는게 꼭 뭐 가카나 상득이흉 정도의 레베루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더라구;;험험;;하튼 머;;
그 인터뷰 항목중에 "당신의 직업에 만족하십니까?"
뭐 이런 질문이 낑궈 있었슴.
이 상투적인 질문을 보는 순간 아주 먼 기억으로 빽.
"시인이 되고 싶었다."
국민학교 4학년? 6학년? 잘 기억은 안남.
그 겨울방학 숙제중에 지랄 같은 같은 반 후렌드들 숫자만큼 -무려 60명이다-
동시를 지어서 그림을 그리고 60장을-무려 60장이다-똑같이 만들어 오라는 거야.
오해는 하지 마.
당시에는 노떼캐논도 없고 프린터, 컴퓨터도 없었지.
순수가내수공업 수준의, 70년대 어두운 백열등 밑에서 민중해방을 위해
찌라시를 등사하는 심정으로 그렇게 그렇게 60장 도화지를 메꿔가는 거였어.
잠시 복기해보자. 잘 될까 모르겠다.
자 대략 이런 시였던 것으로 기억난다.
어디서 배꼈는지 창작인지는 모른다.
중요한 것은 60장이라는 과도한 업무량의 효율적 처리를 위하여
짧고 굵게 대량생산 대량처리가 가능한 능률적 시와 그림
남들이 겨울 내내 애들 답지 않는
사랑과 자연과 부모님에 대한 은혜로 60장을 그려왔을 때
극도의 리얼리즘을 실현한 이 짧은 시 하나로
칭찬을 받고 말았다는 것.
'참 순수하구나.'
그 순간 나의 꿈은
시인이 되는 거다.
푸르른 하늘을 보고
그 푸름을 바늘로 뽁 찌르면
푸른 눈물 한 방울 푹 떨어질
감수성을 쌓아야 했지.
노력 따위는 없다.
시인은 타고 나는 것.
그렇게 그렇게 수 십년이 흐르고
그 얼척없던 내 엄청난 재능은
이렇게 이렇게 변질 되어왔고
다시 변질 되어 가고 있다.
하지만 나에게 드립은 시다.
그리고 나이 40넘게 처 드시고
마눌도 비웃고 트친도 비웃고
스스로 부끄러워 오프에서는 공개 못하는
또 다시 시라쓰고 남들은 썩개라 비웃는
꿈을 시작하려 한다.
그때 내 담임 선생님 이름이
백열등처럼 번뜩인다.
오*자 선생님.
지옥이나 가시라.
-_-지옥불에 끌려왔다-_-
어제 오윤아가 아이비의 엽기표정을 보고 이랬음.
"아이비 엽기표정, 웃기지 않고 거부감 들었다"
내가 바로 그러하다.
"딴지 썩개, 웃기지 않고 거부감 들었다"
그런데 왠지, 내가 오윤아처럼 될 것 같으다-_-
이로써...
썩개의 헬 게이트가 열려 버린 것인가..
나는 오늘 아무 생각도 없이 너무나 무서운 짓을 저질러 버리고 말았다.
아아, 여보게들..
뒷감당은 당신들이 하시오.
나는 감기몸살이 지독하게 걸린 환자란 말이오.
이상으로 위트업스 최초의 게시물을 화려하게 작성하는 바이다.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
이 따위의-_-썩개를 치고 사라진 물뚱.
하지만 이는 어딘가 모르게 1% 부족하닷. 하지만 지금은 일과 시간이니 더 이상의 썩개는
힘들다.
어째든 이렇게 된 이상-_-갈때까지 간다.
끗-_-끗.
.
나는 오늘 아무 생각도 없이 너무나 무서운 짓을 저질러 버리고 말았다.
아아, 여보게들..
뒷감당은 당신들이 하시오.
나는 감기몸살이 지독하게 걸린 환자란 말이오.
이상으로 위트업스 최초의 게시물을 화려하게 작성하는 바이다.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
이 따위의-_-썩개를 치고 사라진 물뚱.
하지만 이는 어딘가 모르게 1% 부족하닷. 하지만 지금은 일과 시간이니 더 이상의 썩개는
힘들다.
어째든 이렇게 된 이상-_-갈때까지 간다.
끗-_-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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