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6월 27일 수요일

무림의 세계


무림의 세계는 오묘하다. 구파일방의 정파도 오묘하고 대륙을 종회하는 사파도 오묘하고 마교 일당은 언제나 섹시하다.

하지만 우리는 이 무림의 세계를 접할 때 항상 한자라는 언어의 틀을 접해야 함으로써 혼선이 빚어지기 마련이다. 이에 무림의 역사를 기록하는 사람(누가 시켰나?)으로서, 이 혼선을 마감하고 올바른 표준 무림언어를 확립해야 할 의무감이 들어 여기에 기록을 남긴다.

도화도주 동사 황약사의 딸 황용과 결혼하여 정파 무림의 거두로 성장하고 송나라를 위해 몽고군과 싸우기(오지랍 대마왕.)까지 하는 곽정의 무공 중에 가장 강력한 무공인 항룡십팔장.

이 항룡십팔장이 항룡십팔장인가 강룡십팔장인가 하는 의문은 끊이지 않고 제기된다. 하지만 이 문제는 용을 항복시킬 정도로 강력한 무공이라는 뜻의 항룡십팔장이 의미상 맞다. 물론 항과 강은 같은 한자의 다른 음이라서 이런 혼란이 생긴 것이다.

그러나 항룡십팔장의 구결이 단계 단계 상대를 무릎 꿇리는 내용으로 이루어진 바, 한자에 대한 기본 지식이 있다면, 항룡십팔장이 맞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초창기 무지한 번역자들이 항으로 번역해야 할 것을 강으로 번역하는 바람에 생긴 혼선으로 마무리된다.

하지만 항보다는 강이 발음이 훨씬 멋있는데. ㅎㅎㅎ

규화보전 귀화보전도 규화보전이 맞는 걸로 정리가 된다.

그러나..

더욱 무서운 비밀은 그 다음에 숨겨져 있었는데..

이 규화보전이 바로 무림을 떠들썩 하게 만든 무공비급 치고 거의 유일한 국산 비급이라는 거다. 그러니까 조선 출신의 비급.

그로 인해 불쌍해진 사람이 바로 동방불패다.

<나 불러써??>

규화보전은 사상 최강의 무공임에도 불구하고 치명적인 결함이 있었다. 가장 마지막 구결에 있는 "거세정진" 이 문제가 된다. 즉 이 무공을 완성하려면 남성의 상징을 제거해야만 한다는 비극의 무공이 된다.

동방불패는 자신의 무공을 최고로 끌어올려 무림을 지배하기 위해 결국 큰 마음을 먹고 거세를 하고 정진했으나, 뜻밖에 무공이 오히려 줄어드는 상황을 맞게 된다. 이에 열이 받아서 규화보전의 버전별 차이를 연구하기 위해 각지를 돌며 규화보전 귀화보전 심지어 구화보전까지 다 입수해서 읽어본 바, 미세한 차이들이 존재함을 알아내게 된 것이다.

결국 추리에 추리를 거듭한 결과 이 모든 짝퉁 규화보전이 존재하는 이유는, 원서를 잘못 번역한 무식한 번역자들 때문이라는 것을 알아내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규화보전의 원전은 도대체 어디에 있단 말인가.

결국 천하를 방랑하면서도 원서를 찾지 못한 동방불패는 결국 동방으로 동방으로 떠돌다가 한반도 조선땅까지 오게 된다.

조선땅 중허리에 존재하는 금강산 일만이천봉 골골이 자리잡은 수많은 암자를 다 뒤진 끝에 일만일천구백팔십이번째 봉우리 밑에 있는 암자에서 드디어 원서를 발견한 동방불패..

문제의 "거세정진" 구결의 원전이 뭔가를 확인하기 위해 황급히 가장 마지막 장을 펼쳐 들었다. 거기에는 세종대왕이 창제하신 한글로 또박또박 적혀 있기를..

이상의 무공 초식을 좆나게 연습하고 좆빠지게 연습해라.. 그래야 최강자가 될 수 있다.

라고 써있는 것을 발견하고 만다.

그 구절을 무식한 한문 번역자가 그냥 "거세정진"으로 번역하는 바람에.....



눈물없이는 볼 수 없는 동방불패의 숨은 스토리가 완성되었다는 전설이..



근데 사실 물뚝심송도 무림 비급의 일종에서 기원했다는 비밀은 절대 밝힐 수 없다.






2012년 6월 26일 화요일

수박서리의 추억



모든 범죄자들이 그렇듯이 처음부터 그럴 생각은 절대 아니었다.

처음에는 그저, 손님들이 오실 거니까 수박밭 가서 수박좀 몇통 사오라시는 아버님의 명을 받자와 수박을 사러 갔을 뿐이었다.

동네 어귀를 좀 벗어나면, 탁 트인 평지가 나오고 거기에 너른 수박밭이 있어서 매년 그 밭에서 나오는 수박으로 동네사람들 모두가 더위를 이기던 그런 좋은 수박밭이었고, 밭의 주인 할배도 워낙에 마음씨 좋은 분이어서 한덩이 값을 내면 두덩이를 주던 그런 분이었다.

거름을 튼실하게 주고 밭 관리를 워낙에 정성스레 하시던 분이라 그 할배의 수박은 달기로 소문이 났었고, 옆마을에서도 와서 사가곤 했던 그런 곳이었다. 장성한 자식들은 모두 서울로 떠나고 할매도 일찍 저 세상으로 보낸 뒤 사는 낙이라고는 수박밭을 가꾸고 그 밭에서 나온 수박을 달고 맛나게 먹어주는 사람들의 인사를 받는 것 밖에 없던 순박한 할배.

그 수박밭 한 가운데에는 생뚱맞게도 커다란 미류나무가 한 그루 서 있었고, 그 나무 그늘에 원두막이 있는 바람에 지나가던 사람들도 거기에 잠시 멈춰 한 여름에 길 가느라 등에 배인 땀도 들이고 가곤 하던 곳. 밭 근처에 있던 할배내 집 마당의 우물에서 파이프를 연결해서 원두막에다가 설비를 해 놓은 덕분에 원두막에서는 시원한 물도 콸콸 나오던 그런 훌륭한 천연의 휴게소 역할을 하던 곳이었다.


<위 사진은 기사중 특정 사실과 전혀 관계가 없으며 대놓고 서리해온 사진임을 인증함.>


그 날 역시, 친구들 서넛을 옆에 거느리고 보무도 당당하게 원두막을 향해 걸어갔다. 주머니에 수박 댓통 값이 들어 있으니 당당한 고객의 자격이지 않은가.

우린 또 쪼잔하게 밤중에 수박 껍데기 머리에 쓰고 몰래 기어가서 수박 훔쳐먹고 그런 짓은 안하던 통큰 시골아이들이었으니까..

근데 웬걸, 원두막에 도착해보니 늘상 거기서 손에 파리채 들고 베잠벵이 입고 주무시던 주인 할배는 어디로 마실이라도 가셨는지 보이지가 않는 거였다.

"얘들아, 어쩔 수 없다. 일단 기다려보자. "

그러고 나서 원두막에 앉아서 누워서 뒹굴뒹굴하고 있는데 영 안오신다. 어디 멀리 가셨나 보다. 결국 우리가 가져갈 분량의 수박을 잘 익은걸로 골라 따다가 다라이에 시원한 새 물 받아놓고 넣어뒀다. 


그래도 안오신다. 


결국 기다리다가 갈증도 나고 해서 시원한 수박 하나를 원두막 기둥 옆 틈새에 꽂혀있던 부엌칼을 꺼내 쫙 쪼개서 같이간 친구들하고 해치워 버렸다. 


"아, 이거 어쩌지? 할배 오시면 우리가 먹은 것도 값을 내야 될 거 같으니까 껍데기는 숨기자. "


잔머리를 막 쓰면서 우리가 먹어치운 한통의 수박에서 나온 껍데기는 증거인멸 작업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그래도 안 오신다. 


"아, 덥다. 등목이라도 한판씩 할까?"

친구들은 차갑다고 소란을 막 떨면서 돌아가메 한 명씩 시원하게 등목까지 했다. 그래도 안 오신다. 슬슬 잠이 온다.

원두막에 너댓명의 아이들이 널부러져 곤하게 잠에 빠진다. 여름만 되면 어디 장난거리 없나 하고 밤과 낮을 가리지 않고 불철주야 몰두하던 아이들이니 피곤할 만도 하다. 그렇게 한잠씩들 늘어지게 자고 일어나도 할배는 안 오신다.

결국, 집에서 기다리실 아부지 생각에 더 이상은 지체할 수 없다는 효심어린 생각이 머리속에 떠오르고, 우리는 교활하게도 이건 어쩔 수 없는 사고라고 합의를 보고 우리가 다녀간 흔적을 정교하게 지운 뒤, 차갑게 식은 수박들을 한통씩 들고 원두막을 벗어났다.

"근데, 너 그 수박값은 어쩔거냐? "

순간 사악한 생각이 발동한 나는 호기롭게 외치고 말았다.

"어쩌긴 뭘 어째, 그냥 꿀꺽 하는 거지. 우린 원두막 가서 돈주고 이 수박 사온거야. "

"그래도 될까?"

"안될건 또 뭐야~ 입이나 다물어. "

그렇게 음모를 꾸미고 집에 도착해 보니 벌써 몇몇 손님들이 와 계시고 엄니는 수박을 심어서 캐 왔냐고 야단을 치신다. 그래도 찬물에 담궈서 시원하게 만들어서 가지고 왔노라고 자랑을 하고, 수박값 얘기는 아예 꺼내질 않고 눈치를 본다.

마루에 앉아 계시던 아부지께서 물어 보신다.

"그래, 수박은 잘 사왔냐?"

"네~~~"

"수박값은 잘 드렸고?"

"네~~~"

"음홧홧홧.. 가소로운 녀석.."

아부지가 설마 눈치를 채신 것일까.. 저 말의 의미가 뭘까.. 이제라도 순순히 자백을 하고 수박값을 토해내야 되는 건가.. 온갖 상념이 머리속에서 회오리 바람을 일으키고 있는데, 마당 건너 뒷간에서 수박밭 할배가 바지춤을 여미면서 나오신다.

"이것들, 나 없다고 밭에서 수박 몇통이나 따묵었냐, 이눔들아~~ "





"아부님, 소자 첨부터 횡령의 계획을 가지고 있던 것은 절대 아니옵고, 호부호형을 허하시고, 죽여 주옵소서~~~~~~~"




공돈 좋아하면 대머리 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