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6월 16일 토요일

쓰리랑부부



BGM정보: http://heartbrea.kr/3194800


점점 시간이 들어감에 따라 알게 되었어.

내가 사랑하는 엄마 아빠와......

좀 다르다는 거.....

하지만 그게 뭐가 그렇게 중요해.

나에게는 진짜 엄마 아빠인 걸.

울지않아......


비록 엄마는 일자 눈썹에 나같은 꼬리도 없고

아빠는 엄마한테 매일 혼나는 주정뱅이라도

괜찮아.



나에게는 진짜 엄마 아빠인 걸.



보고싶다......엄마......



아리랑


이석기가 아리랑을 애국가로 하고 싶은가 보다.

해서 이 대목에서 갑자기 튀어 나오는 아리랑 개그.

아리랑과 쓰리랑의 엄마는?

당연히 아라리다.

왜냐고?

아리 아리랑, 쓰리 쓰리랑, 아라리가 낳네~ 


그래그래.. 여기까지는 다 안다 이거지?




그렇다면 아리랑과 쓰리랑의 아빠는?

아빠는 아리다.

아리랑 응응응 아라리가 낳네~

아라리가 아리하고 응응응을 해서 낳았다잖은가.


이것도 알고 있었다고?

그렇다면 진짜 모를 만한 얘기를 해 주겠다.

아리와 아라리가 응응응을 하는 사이라서 아리랑이 태어난 건 이해가 단다. 그러니 당연히 아리 아리랑.. 아리랑의 성이 아빠를 따라서 아리 잖은가.

그렇다면 도대체 쓰리 쓰리랑, 성이 쓰리인 쓰리랑의 아빠는 누구란 말인가.

도대체 아리와 아라리의 관계에 난데없이 끼어든 쓰리는 누구란 말인가?

이 출생의 비밀, 역사속의 삼각관계를 명쾌하게 밝히는 자에게는...




그믐달이 뜨는 밤중에 귀신이 찾아온다고 한다.

그래서 류관순 할머니가 돌아가신거야.




오오.. 신이시여.. 과연 이 썩개를 제가 쳤단 말입니까...



2012년 6월 14일 목요일

천재적인 장인의 솜씨


자기전에 침대에 누워 아이패드로 영화를 보는 버릇이 생겼다. 영화거나 미드거나..

이 때 참 좋은 앱이 "에어비디오"라는 게 있다. 피씨에 특정 폴더를 지정하고 영화 파일을 넣어 두면 와이파이를 통해 아이패드에서 골라 볼 수 있는 기능.. 어지간한 파일 포맷을 모두 피씨에서 실시간 인코딩을 해서 뿌려주는 서버 기능이 있어서, 아무 포맷의 영화도 다 플레이 가능하고 한글 자막 지원도 잘 된다.

물론 사전에 인코딩 해놓는 기능도 있어서 인코딩을 해 두면 더 빠르게 작동되고, 피씨에 부담도 안된다. 피씨에 부담이 가 봐야 어차피 잠들 시간이니 상관없을 수도..

하여간.

그렇게 해서 영화나 미드를 보는데.. 심각한 문제가 하나 생긴다. 자세가 문제가 된다.

제일 좋은건 편안하게 누운 자세에서 봤으면 좋겠는데 그러면 아이패드를 들고 봐야 한다는 거. 팔이 졸라 아프다. 졸다가 떨어트리기라도 하면 자다가 봉변을 당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옆에서 자는 사람 등짝에 기대 세워놓을 수도 없다. 옆으로 눕는 자세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다.

아이패드를 거치할 수 있는 스탠드가 필요한 상황..

그래서 작업에 들어간다.


그 시작은 사실 이걸 발견하면서부터였다. 낚시대를 둘 곳이 없어서 거치하기 위해 준비했던 그것. 가게에 물건 전시할 때 쓰는 건데 격자형 철망에 저걸 곳곳에 꽂아서 거기에 물건을 걸어두는 그거다. 이름은 모른다.

그게 우연히 침대 옆 창틀에 꽂아 보니 딱 맞는 거다.

그러면 아이패드를 여기에다가 걸기만 하면 되겠군.


이것은 세탁소에서 흔히 주는 흰색 철사 옷걸이.

그걸 플라이어로 잡고 여기저기 휘어서 저런 형태로 만들었다.

옷걸이 머리 부분은 그대로 재활용된다. 이렇게...


여기에 아이패드를 장착한 모습.


이걸 가져다가 창틀에 꽂힌 검은 그 무엇에 걸어 본다.


침대에 편하게 누워서 바라보면 이렇게 보인다. 밤중에 찍을 걸 그랬다.


영화를 플레이 해 본다. 퍼펙트 스톰의 한 장면.


편한 자세로 누워 눈앞 70센티 정도에 영화 스크린이 대롱대롱 달려 있는 형상이다.

내가 원하는 스펙에 딱 맞는 아이패드 거치대가 비용 제로로 만들어졌다.

마눌님과 딸아이가 보더니 박장대소를 한다. 웃겨 죽겠단다. 뭐 편하면 장땡이지..



단점은.. 자세가 너무 편하다 보니 영화 틀어놓고 자세잡고 나면 거의 오분안에 잠이 든다는..

옆자리에 누운 사람이 시끄럽다고 항의하면 이어폰을 꽂고 들어도 좋다. 대사 많은 미드를 보다가 잠이 들게 되면 꿈속에서 대사가 막 들리고 심지어 대화를 하기도 한다. ㅋㅋㅋ

꿈속에서야 뭐 영어가 문제랴.. 라틴어도 할 줄 안다.


2012년 6월 13일 수요일

레시피


보내주신 편지에서 짐승의 고기를 전혀 먹지 못한다고 하셨는데, 이것이 어찌 생명을 연장할 수 있는 도라고 하겠습니까. 섬 안에 산개(山犬)가 천 마리 백 마리 뿐이 아닐 텐데, 제가 거기에 있었다면 5일에 한 마리씩 개를 삶는 일을 결코 빼먹지 않겠습니다. 섬 안에 활이나 총이 없다고 하더라도 그물이나 덫을 설치할 수야 없겠습니까. 이곳에 있는 사람 하나는 개 잡는 기술이 뛰어납니다. 그 방법은 이렇습니다. 먹이통 하나를 만드는데 그 둘레는 개의 입이 들어갈 만하게 하고 깊이는 개의 머리가 빠질 만하게 만듭니다. 그 통 안의 사방 가장자리에는 두루 쇠낫을 꽂는데 그 모양이 송곳처럼 곧아야지 낚시바늘처럼 굽어서는 안 됩니다. 통의 맡비닥에는 뼈다귀를 묶어놓아도 되고 밥이나 죽 모두 미끼로 할 수 있습니다. 낫이 박힌 부분은 위로 가게 하고 날의 끝은 통의 아래에 있게 해야 하는데, 이렇게 되면 개가 미끼를 물고 나면 그 주둥이가 불룩하게 커져서 사면으로 찔리기 때문에 끝내는 머리를 빼지 못하고 공손히 엎드려 꼬리만 흔들고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5일마다 한 마리를 삶으면 하루 이틀쯤이야 생선요리를 먹는다 해도 어찌 기운을 잃는 데까지야 이르겠습니까. 1년 366일에 52마리의 개를 삶으면 충분히 고기를 계속 먹을 수가 있습니다. 하늘이 흑산도를 선생의 탕목읍으로 만들어 주어 고기를 먹고 부귀를 누리게 했는데도 오히려 고달픔과 과로움을 스스로 택하시니, 역시 사정에 어두운 것이 아니겠습니까? 

들깨 한 말을 이 편에 부쳐 드리니 볶아서 가루로 만드십시오. 채소밭에 파가 있고 방에 식초가 있으면 이제 개를 잡을 차례입니다. 또 삶는 법을 말씀드리면, 우선 티끌이 묻지 않도록 달아매어 껍질을 벗기고 창자나 밥통은 씻어도 그 나머지는 절대 씻지 말고 곧장 가마솥 안에 넣어서 곧바로 맑은 물로 삶습니다. 그리고는 일단 꺼내 놓고 식초, 장, 기름, 파로 양념을 하여 더러는 다시 볶기도 하고 더러는 다시 삶기도 하는데 이렇게 해야 훌륭한 맛이 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박초정의 개고기 요리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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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내용은 흑산도로 유배간 정약전이 강진땅에 유배되어 있던 자기 동생 정약용에게 "섬에 들어온 뒤로 맨날 생선만 먹고 고기를 먹지 못해 죽을 것 같다" 라고 하소연하는 편지를 보내자, 정약용이 보내온 답장이 되겠다. 출처는 이태원씨가 쓴 <현산어보를 찾아서> 제2권 152p..

5일에 한마리씩 개를 삶아서 1년 366일 52마리의 개를 잡아 먹겠다는 웅대한 포부를 보여주는 정약용의 호연지기가 부러울 정도로 잘 묘사되어 있다. 씨바.. 대단햐~~~ 

하지만 애석한 것은 흑산도에는 실제로 개가 단 한마리도 없었다는 점이며, 정약전은 개고기를 먹을 수가 없었으니, 들깨 한 말은 어찌되었는지 궁금하다.

결국 정약전은 물고기에 잘 적응해서 해산물 만으로도 건강하게 잘 살았다고 한다.

개고기 삶는 법에 대한 설명 부분은 실제로 농촌에서 개를 잡아 먹을 때 하는 방법과 완전히 똑같으며, 그 방법을 만들어냈다고 인용되고 있는 박초정은 조선 후기 실학자중에서 북학파의 거두이며 밀양박씨였던 박제가이다. 그의 자가 초정.

정약용도 당시대의 네임드라서 그런지,네임드끼리 언급하며 편지를 쓴다. 줸-_-장..





보신탕 한 그릇 먹고 싶어지는데, 옆에서 탱구가 눈을 초롱초롱하게 뜨고 지켜보고 있어서 그러지도 못하겠고.. 아주 죽겠다. ㅎㅎㅎ




짧은 군대 얘기.



















오늘 논산에 일하로 갔다가 일부러 들른 논산훈련소 입소대대. 전에 내가 입대할 대략 20년 전하고는 많이 달라져서 전혀 다른 느낌이긴 한데 논산이라는 도시 자체가 주는 그 아련함은 여전한 거 같음.

아...오늘 줌렌즈 안챙겨 간 게 정말 후회된 날. 단렌즈가지고 발줌으로 사진 찍으려고 하니 길가에 있어서 참 사진찍기 힘들어서 몇 장 못 건지고 대충 한 3~4방 후다닥 찍고 왔는데 집에 와서 보니 쓸만한 사진이 없네. 줵일.

군대 얘기 나왔으니깐 군대에서 겪었던 얘기 하나.

끄뎅이흉은 군대 얘기 잼없어 하니깐 짧게 하겠슴.


울 부대에 밤에 근무서는 초소가 세군대 정도 있는데 북동쪽 초소가 졸 무서움. 울 부대가 벽제 공동묘지 근처임. 그 벽제 공동묘지가 사람들이 자주오는 곳 말고도 엄청나게 뒤로도 많은데 울 부대 근처에는 임자 없는 무덤 뭐 이런거 많았슴. 그래서 땅파다 보면 평묘로 쓰인 관도 많이 나오고 뭐 그럼.

그래서 이등병 쫄딱은 밤에 혼자 잘 안 내보냄. 가능하면 최소 상병정도 한 마리랑 같이 근무를 내보내는뎅 왜냐하면 이게 아무리 20대 초반 짱짱한 나이더라도 이게 진짜 좀 적응이 옆이 공동묘지고 밤에 비라도 부슬부슬 내리면 상병도 좀 으슬으슬하게 무섭고 이슬좀 내리면 도깨비불도 둥둥 떠다니고 뭐 그래서 이등병 애들 가끔 귀신보고 기절하곤 함.

내가 병장1호봉인가 상병말인가 잘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내가 그날 일직부사령 서고 있는데 부대에서 오발사고 나서 한 명 실려갔슴. 이게 군대 갔다온 사람은 알겠지만 군대에서 총맞으면 조땜. 완전 조땜. 죽지는 않았는데 지휘계통들은 완전 진급부터 줄주리 나가리임. 다행히 총맞은 일병놈 죽지는 않고 그냥 장좀 짤라내고 제대했씀.

그래서 부대장 졸라 빡쳐있는데 이게 그 즈음에 근무서다가 일병 한마리랑 이병 한마리가 같은 초소에서 연달아 정신이 나가버렸씀. 이게 졸라 웃긴게 사람 넋나간 거 본적 있으려나 모르겠는데 진짜 그 만화에서 넋나간거랑 비슷함ㅋㅋㅋ

근데 이놈들이 한 하루이틀 뒤에 정신 돌아온 후에 말하는데 본 귀신이 같은 거임.

얼굴이 반쪽 뿐이 없는 처녀-_-귀신;;;;;;

줵일. 그래서 그 뒤로 한 참동안 일병이하는 동틀무렵 근무랑 초저녁 근무만 서고 줵일 고참들이 졸라 빡센 새벽 2시 3시 이런 근무 섰씀.  난 원래 짬이 되서 외곽은 안나갔는데 뭐 나도 근무나가게 되었씀

하튼 그래서 부대가 뒤숭숭한데 어느날 부대장이 진급 앞두고 있던 놈이 었는데 갑자기 전 중대에 명령 하달.

울 부대 북동쪽 목책을 삥둘러서 소나무 진달래 잡나무 등등을 빽빽하게 심으라는 거임. 뜬금없이. 이유는 우리부대 복이-_-북동쪽으로 슬슬 새서 부대에 사고가 난다고 무당이-_-그랬다는 거임.

이게 진짜 믿기지 않겠지만 졸라 어이없이 무당 한마디에 졸라 우리 대대병력 모두 낮에 훈련도 않하고 한 일주일 동안 각각 흩어져서 산에 몰래 올라가서 나무를 뿌리채 뽑아서 -이거 걸리면 조땜. 절도임- 심는거임. 빽빽하게. 졸라 복이 못도망가게. 북쪽부터 동쪽까지. 졸라 빽빽하게. 그리고 졸라 매일 물도주고 졸라 가꿨씀.

근데...이게 세월이 지나는데...신기하게

그 애들 매일 기절하는 초소 그뒤로 북쪽부터 동쪽까지 심은 소나무 진달래 이런것들이 딱

그 초소 뒤로 약간 북쪽으로만

다...죽...었...슴.

2012년 6월 12일 화요일

육사출신


분명히 밝혀 두지만 이 글은 개인의 사소한 경험을 근거로 특정집단을 감정적으로 비난하는 아주 공정하지 못한 쓰레기 글이다.

재미라도 있었으면 좋겠는데, 아마 재미도 없을 것이다. 화만 나겠지.

결국 육사출신들 욕한다는 핑계로 군대 얘기나 하려는 음험한 목적에 의해서 쓰여진 글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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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현역을 나왔지만 행정병과에 근무를 했기 때문에 일반 보병들과는 좀 다른 경험을 많이 한 편이다. 그것도 말단부대 행정병도 아니고 사단 사령부에 근무를 해서 장교들을 아무래도 좀 많이 겪어 봤다. 그것도 아주 추잡한 모습들을 주로 보게 된다.

직책이 장교 인사 담당관을 보좌하는 장교계원이었거든. 인사철 되면 진짜 볼만하지.

상병넘어 병장쯤 되면 사단 인사처 장교계원은 내가 병사인지 장교인지 구분이 안갈 정도로 끗발이 올라간다. 인사고과에 해당되는 모든 장교들이 틈만나면 인사처 사무실에 기웃거리는데, 그들의 손에는 하나같이 뭔가 들려 있거든.

인사처 처부 사무실 전설에 의하면 그들이 들고온 영비천을 만병 먹으면 제대한다는 얘기가 있다. 제대하기 전에 만병 먹으려면 하루에 열다섯병은 먹어야 되는데..

하여간 내 눈에 비친 육사출신들은 참 구차한 자존심에 목을 매는 한심한 인간들이었다. 뭐 솔직히 말해서 육사출신들이 조금 똑똑하긴 하다. 그래봤자 삼사에 비해 그런거지 일반인의 관점으로 보면 학군이나 학사출신들이 더 똑똑하다. 하긴.. 군바리 똑똑해봐야 민간인만큼 하겠는가..

먼저 얘기할 인간은 사단장. 그것도 오리지날 육사출신 엘리트 사단장. 복무기간 내내 세명의 사단장을 겪어 봤지만, 이 인간이 제일 황당하다.

부임하자마자 내린 첫 명령이 사단 사령부 영내에 눈이 한톨도 보이면 안된다.. 라는 거였다. 연병장 네개에 헬기장 세개, 사령부 처부 사무실에 본부대 내무반. 수송대 정비창, 경비소대 막사, 어지간한 대학 캠퍼스보다 넓은 사단 사령부, 그것도 산 기슭 중턱에 있어서 겨울만 되면 눈이 똥 쌓이듯이 쌓이는 사단 사령부 영내에 눈이 안 보이게 하라고?

본부대, 경비소대, 수송대, 다 합쳐서 이백명도 안되는 병사들 가지고? 미친거 아냐?

바로 전에 있던 사단장이

"겨울에는 눈이 좀 쌓여 있어야 겨울이지, 길만 치우고 연병장은 애들 축구하게 한개만 치워."

이러던 위대한 장군이라서 그랬는지 더욱 끔찍했다. 그 이후로 눈이 내리면 새벽 한시고 두시고 몽땅 뛰어나와 쏟아지는 눈 맞으면서 밤새 눈을 치워야 했다. 그걸로도 모자라서 통신대대 수색대대 공병대대 다 불러다가 아침에 사단장이 관사에서 나오기 전까지 영내 눈 전멸작전을 수행해야 되는 기이한 경험을 하게 된다. 그러고도 눈 제대로 못 치웠다고 인사참모는 매번 눈 올때마다 쪼인트를 까여야 됐다. 육군중령이...

그 와중에도 깨알같이 삼사출신 인사참모만 졸라 까이고, 육사출신 작전참모는 같이 술 먹으러 다니더라.

뭐 그런게 군인정신의 발로라고 주장한다면 이해해주지 못할 바는 없다. 그런데 그런 완벽한 군인정신을 가진 인간이 바빠 죽겠는 사단 본부 병사들을 동원해서 지 정력에 좋다고 강원도 산골짝을 헤매면서 "삼지구엽초"를 캐러 다니라고 시키는 건 뭔가? 그것도 군인정신?

철 되면 뒷산에 우거진 잣나무 숲을 털어서 그 끈적거리는 거 손에 다 묻히고 자연산 잣을 이따시만한 통에 가득 채워 상납해야 되고, 김장철 되면 참모들 사모들을 몽땅 불러다가 지네 집 김장 담그라고 시키고 자기는 부부동반해서 서울로 뮤지컬 보러 가고.

그러면서도 삼사출신 참모들 사모는 식모 부리듯이 부리면서, 서울로 뮤지컬 보러 갈 땐, 육사출신 사모들 몽땅 대동하고 간다. 이게 군인정신인가 육사정신인가.

그런걸 보면서, 씨바 나라면 당장 이혼하등가, 아니면 남편 군생활 때려치라고 하겠다는 맘이 들다가도, 저러지 않고서야 어디 삼사출신이 말똥 두개 달고 전방사단 참모까지 했겠나 싶어 맘이 짠해졌던 기억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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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군만 그런가?

내가 인사처 처부 고참될 때 쯤 들어온 육사출신 인사참모.

이 인간은 키도 조막만한게 잔망스럽게 생겨가지고 지가 무슨 훤칠한 미남 장교라도 되는 양 가오는 졸라 잡는다. 한참 혹한기 훈련이라고 산속에 숙영지 만들고 연대 훈련 감독하고 있는 와중에 새벽 한시에 등장해서 한다는 소리가...

"난 야전 체질인가봐. 훈련만 나오면 라면이 먹고 싶다니까. 허허허~ "

훈련시 야간 취식은 영창감이다. 물론 우리도 몰래 먹는다. 아니 몰래 먹으라고, 연대장들이 드리쿼터에 트레일러 달고 만두에 치킨에 김밥에 라면에 심지어 경월소주까지 바리바리 싸다가 들이밀어 준다. 나 그런거 받아 먹고 군생활했다. 사단 인사처에서 작성하는 훈련평가 점수 하나에 연대장들 인사고과가 왔다리 갔다리 하는데 뭐.

그런데 참모라는 자가 한밤중에 근무처에 와서 시린 손 비비면서 훈련일지 쓰고 있는 처부 병사에게 라면을 가져오라고 시키는 거다. 그게 야전체질?

그래서 입이 이만큼 나왔지만 참고 비장의 신라면 컵라면에 끓는 물 부어다 갖다 주니까 한다는 소리가..

"아니, 이거 말고, 끓인 라면. 난 컵라면은 종이냄새 나서 못 먹어."

대단한 야전체질 장교 나셨다.

간혹 병사들 텐트에 인사장교 대위 나부랭들이 들어와서 병사들 라면 끓여 먹는데 끼기도 한다. 솔직히 인사처 병사들 사망자(물론 훈련이니까 가상 상황이다.) 보고 받느라 자리를못 비워 배식타임 놓쳐서 밥도 제 때 못 먹는다. 그래서 겨우 오밤중에 모여 장교들 눈 피해서슬금슬금 라면으로 배채우고 그러는데 거기 눈치없이 장교가 끼어서, 어이, 나도 한그릇 줘봐~ 이러면 무개념 장교로 찍히는 거다. 그걸 아니까, 그런 자리 낄 때면 대위라 해도 어이~ 박병장, 졸라 미안한데, 나도 한 입만 줘봐. 추워서 그래..추워서.. 이러면서 비실비실 웃으면서 끼는 거다. 지들은 때 되면 장교식당차에서 부페로 밥 먹거든.

그런 상황에 참모라는 자가 나서서 일하는 병사에게 야전 숙영지에서 혹한기 훈련 하는 와중에 김이 모락모락 나고 쫀득쫀득한 면발을 자랑하는 끓인 라면을 가져오라는 거다.

씨바, 써놓고 보니 별거 아닌 거 같다. 하지만 당시에는 눈에서 불똥이 튀는 경험이었다.

끓여다 줬지 뭐. 힘있나. 계급이 깡패고 보직이 깡패인 세상인데.

맛 없다고 국물만 조금 마시더니 반넘게 남겨 놓고 나가 버린다. 치운답시고 라면이 반넘게 남아 있는 식판 들고 나가 텐트 뒤에 있는 소나무에 내리쳐서 뽀개 버렸다.

그 참모가 인사를 하는 과정을 보면 대략 이렇다. 장교의 신상명세와 경력이 다 적혀 있는 장교자력표를 분류하는데 일단은 육사출신들 것만 별도로 뽑아오라고 시킨다. 그거 보면서 고민 졸라 한다. 전화도 졸라 한다.

"야, 내가 니 사정 잘 아는데, 너 이번엔 거기 못가. 내가 아무리 선배로 널 챙겨주려 해도, 너 지난번에 사고 친것도 있고.. 이번엔 니가 참아라. "

사고는 개뿔, 더 심한 사고 친넘도 A급보직으로 발령 냈잖냐. 니가 말한 그 사고가 지난번 니가 모은 술자리에서 제일 싸구려선물에 제일 얄팍한 봉투 가져온 사고를 말하는 거냐?

그렇게 치고박고 고민하면서 일단 육사출신들 대상자로 모든 인사작업을 마무리 한다. 그리고 나머지 장교 자력표는 그냥 대충 가져다가 쌓아 놓고, 육사출신들 다 배치하고 남은 찌그레기 자리에 그냥 랜덤하게 가져다 꽂는다. 이게 육사 출신의 인사업무 처리하는 법이다.

거기다가 소령 보좌관이,

"참모님, 얜 비록 삼사출신이지만 지난번에 사단장님이 신경좀 쓰라고한 자원입니다. "

그러면,

"뭐? 이 새끼가 육사도 못 나온게 사단장한테 다이렉트로 짜웅을 했어? 개새끼~ 나중에 나 한테 한번 오라 그래. "

이러면서 마지못해 욕 안먹을 자리에다가 꽂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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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단 사령부 내에서조차 그 차별은 완전 넘사벽이다. 그 상황을 진짜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일화가 또 있는데..

잘나가는 육사출신 대위 하나가 감찰참모 밑에 감찰 장교로 보직을 받아 전입했다. 오자마자 인사처에 오더니, 최고참 인사장교 대위한테 말 까면서 자기 장교 자력표 관리좀 잘 하라고.. 그 인사장교가 삼사출신이었거든.

대위라고 다 같은 대위가 아니다. 중대장 보직을 18개월씩 나눠서 두번을 하게 되어 있는데 그 중간에 참모장교 보직을 1년 하게 되어 있다. 그러니, 1차중대장 하기 전에 참모 하는 대위, 1차 중대장 마치고 참모장교 하는 대위, 2차까지 마치고 참모하는 대위, 이들간의 격차는 위관과 영관의 차이 만큼이나 크다. 중대장도 하기 전에 참모부터 하는 넘은 중위 취급 받는다.

감찰부에 온 대위는 1차도 하기전에 참모 때우러 온 넘이었고, 인사처 인사장교는 그 빡세다는 수색대대에서 2차까지 마치고 참모장교 하러 온 왕고참.

나이로 보나 보직으로 보나 인품으로 보나 하늘과 땅차이인 그 둘의 차이는 각자의 출신이 육사와 삼사라는 넘사벽으로 분리되는 순간 모든 격차가 무시된다.

하늘같은 고참 대위에게 반말로, 어이~ 내 자력표 도착했지? 그거 잘 관리해야 될거야. 하면서 킥킥 거리는 그 새파란 쪼가리를 보고 우리의 인사장교 송대위는 입만 벌리고 있을 뿐이다.

옆에서 선임하사가 나한테 속삭인다.

"씨바.. 너 오늘 송대위 잘좀 해줘라. 사고치겠다. "

 결국 송대위가 슬그머니 일어서더니 감찰장교를 데리고 나간다. 뭐하나 봤더니 통사정을 하고 있다.

"이대위, 내가 이대위 훌륭한 자원이라는 거 잘 아는데, 그래도 애들 다 보고 있고 선임하사들도 있는 자리에서 그렇게 행동하면 안되잖아. 여긴 군대라고.. "

이러고 있다. 마지못해 네~ 네~ 그러던 감찰장교.. 송대위가 돌아서자 마자 마치 들으라는 듯이 한마디 한다.

"거 삼사 새끼가 말 졸라많네. "

결국 폭발한 송대위, 개새끼 소새끼 씨박새끼를 외치면서 한따까리를 하려는 찰라, 보좌관이 등장한다.

이게 정상적인 상황이었다면 우리의 다혈질 보좌관 김소령은 이단 날라차기 한방으로 감찰장교를 의무대로 보냈어야 정상인데, 그날은 정 반대다.

"인사장교의 의무가 뭐야? 새로 부임한 장교들이 업무에 적응할 수 있도록 협조하는 거 아닌가? 왜 신입장교를 오자마자 불러다가 군기를 잡아? 송대위 니가 지금 고참이라고 유세 떠는 거야? 이 새끼, 안되겠네.. "

사실 보좌관도 삼사 출신이다.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렇게 행동을 해야 된다. 그게 송대위를 안다치게 보호하는 유일한 길이니까 말이다.

이 둘, 보좌관하고 송대위, 그날밤 시내에 나가서 찐하게 한잔 했을거다. 어쩌면 소줏잔 따라놓고 찔찔 거리고 울 수도 있다. 육군소령과 육군대위가 말이다. 그게 군대고, 그게 육사와 삼사의 차이다. 군인은 뭐 다 똑같은 군바리인가? 군바리 세계에도 귀족이 있고 천민이 있다. 병사들은? 노예도 못되는 소모품이지 뭐. ㅎㅎ

그래도 병사들은 시간만 흐르면 일반인으로 트랜스폼하는 애벌레라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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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사출신 대위 하나가 처부병사를 하나 작살을 냈다.

물론 병사도 잘못이 좀 있긴 했는데,충분히 말로 끝낼 수 있는 상황이었고, 말로 끝냈어야 하는 상황이었다.그걸 가지고, 덩치도 작은 애를 멱살을 잡아 패대기를 쳤는데, 넘어지면서 뒤통수를 담벼락에 들이받아 머리가 깨졌다.

제때 후송해서 치료했으면 괜찮았을 것을, 머리좀 터진다고 안 죽는다면서 피 철철 흘리는 넘을 세워놓고 또 한참을 쥐어 잡았다.

그러다가 애가 막 정신을 잃고 쓰러지니까 놀래서 의무대를 불렀는데, 사태가 심상치 않아서 군단 헬기 불러서 원주로 후송을 했다.

진단결과는 중증의 뇌진탕인데 뇌혈관이 몇개 터져서 긴급 수술 받고 생명은 건졌지만, 후유증이 좀 남을 거라는 상태.

이거 가족들이 오면 난리 난다. 안그래도 한참 구타금지가 국방부 장관명으로 전군에 전파되고, 일벌백계 하겠다고 설치면서 그 흔한 얼차려도 제대로 못하게 하던 삼엄한 시절에 육군 대위가 육군 일병을 때려 중상에 빠트린 사건이 벌어진거다.

어떻게 해결되었을까?

병사가 축구하다가 골대에 부딪혀서 머리 터진걸로 해결되었다. 가족들에게는 육군 병원에서 완치시까지 치료해 주기로 하고 삼백만원인가 위로금이 전달되었다. 이 돈은 사단내 육사 동기회가 지급했다.

사건을 일으킨 대위가 육사출신 잘나가는 넘이었던 것이다. 

이 사건에 대한 최종 보고서를 인사처 사무실에 앉아서 타이핑을 하는데 머리속이 막 하얘진다.

이게 그래도 끝발있다는 사단 사령부 처부 병사였으니 이 정도지, 말단 보병소대 소총수였으면 어땠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그냥 자살로 처리할 수도 있었고, 사고로 처리했어도 위로금 따위도 없었을 거다.

이거 삼사출신이었다면 이렇게 처리 안된다. 즉각 군사재판 열리고 최소 육개월 깜빵이고 군생활 끝난다. 자기 처부 병사도 아닌 남의 처부 병사를, 그것도 휴일날, 강제로 불러다가 일 시키다가 사소한 잘못 하나 했다고 패대기를 쳐서 애 머리를 깨트려?

이들에게는 룰이고 뭐고 없다.군대, 그러니까 대한민국 육군은 자기들 꺼고, 자기들 입신 출세하는 조직에 불과한거다. 자기들은 나중에 순조롭게 별 달고 이 조직을 이끌 사람들이고, 군대는 딱 두가지로 분류된다. 자기들의 출세에 도움이 되는 넘들과 자기들의 출세를 방해하는 넘들. 도움이 되는 넘들에게는 무한의 연대를, 방해가 되는 넘들은 어떻게 해서든 옷을 벗겨 버려야 되는..

수색대 애들 이끌고 스테로이드 먹어가면서 살벌한 훈련을 소화해내는 성실한 장교들이 있는가 하면, 내 뒤에 별이 열일곱개야~ 라고 개소리 해가며 훈련나가서 양주파티 벌이는 놈들도 있다.

그건 모든 조직이 마찬가지 아니냐고? 아니다. 대한민국 육군은 계급제 조직이 아니라 신분제 조직이라니까..

육사 출신들을 제외하고서는 무서워서 나쁜 짓 자체를 못한다. 육사애들이 노려보고 있거든. 지들은 오만짓을 다 하면서도 다른 장교들이 뭔가 하나 티끌만한 실수를 하면 바로 아웃시켜버리는 놈들이 걔들이거든.

이 구조를 내비두고서는 대한민국 육군은 나아질 방법이 없다.

유일한 해결책은 바로 이거다.

야전 지휘관 숫자를 대폭 축소 시켜 버리고, 군무원 준사관 하사관들을 대거 확대. 병사들은 모병제로 전환해서, 전체 사단 수도 확 줄여 버리고, 군대 자체를 첨단 장비를 다루는 전문가 집단으로 바꿔 버리는 거.

21세기 군대에서 병사들 식비 부식비 의류비 주거비가 군대 유지비용을 제일 많이 잡아 먹는다는게 말이나 되나 말이다.

현역 병사 숫자는 1/3만 있어도 된다. 유사시 동원체제만 갖춰 놓으면 되는 거거든. 그렇게 병사 숫자를 줄이면 사단 숫자도 줄고 불필요한 지휘관 숫자도 줄고, 장교들은 학군중심으로 전문 기술 교육을 이수한 전문가들로 채워 놓으면 된다.

이거.. 백날 떠들어 봐야 뭐하나. 이미 국방연구소에서 이십년전부터 군현대화 시나리오 다 작성해 놨는데, 육사출신 똥별들이 거부해서 썩고 있는걸.

하여간에 이 새끼들은 진짜 답이 없는 애들이다.

그렇게 멀쩡하고 품질좋고 국가를 위해 한몸을 바치겠다고 충성심에 들떠 육사를 지원한 생도 후보생들을 도대체 어떻게 그렇게 빠른 시간내에 다 쓰레기로 변신시키는 건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무슨 특별 훈련이라도 시키나?


















2012년 6월 11일 월요일

홍길동전


이거.. 졸라 재미있는데 듣는 사람들마다 욕을 하긴 한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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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길동이 마음을 먹고 아부지 홍판서가 있는 사랑채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서, 애처롭게 외친다.

"소자, 서자로 태어나 아부지를 아부지라 부르지 못하옵고,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하노니... "

홍판서가 그날 따라 만사가 귀찮았던지, 바로 허락을 한다.

"오늘부터 호부호형을 허하노라~ "

문제는 홍길동이 도술 연습에만 몰두한 나머지 한자 공부를 안했다는 점. 호부호형이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를 못한다.

잠시 무슨 말인가 고민을 하다가 다시 외친다.

"소자, 서자로 태어나 아부지를 아부지라 부르지 못하옵고,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하노니... "

황당해진 홍판서..

"호부 호형을 허한다니깐두루~ "

홍길동은 멀뚱멀뚱 하다가 다시 외친다.

"소자, 서자로 태어나 아부지를 아부지라 부르지 못하옵고,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하노니... "

서너번을 이렇게 반복하자 드디어 우리의 다혈질 홍판서, 열이 머리 끝까지 받아서 벽에 걸려 있던 장검을 내려, 홍길동을 단칼에 베어 버렸다. 하지만 우리의 홍길동이 누군가. 도술을 익혀 십이갑자의 분신술에 능한 몸. 허리를 베어 버려 두동강을 내버렸더니, 키가 반쪽이 된 두명의 홍길동으로 나뉘어져 버렸다.

두명의 홍길동이 엎드려서 듀엣으로 외친다.

"소자, 서자로 태어나 아부지를 아부지라 부르지 못하옵고,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하노니... "

홍판서, 황당해진 나머지 유성호접검 초식을 이용해서 두명의 홍길동을 다 베어버렸더니, 이제 마당에는 1/4 사이즈의 홍길동이 네명이 엎드려 있다.

네명의 홍길동이 콰르텟을 구성해서 외친다.

"소자, 서자로 태어나 아부지를 아부지라 부르지 못하옵고,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하노니... "

홍판서의 검이 독고구검의 초식을 시전하자 마당에는 8명의 홍길동이 엎드려 있고, 그들이 합창하기를..

"소자, 서자로 태어나 아부지를 아부지라 부르지 못하옵고,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하노니... "

홍판서의 검이 다시금 발도제 켄신의 속도로 난무하자 마당에는 16명이..

"소자, 서자로 태어나 아부지를 아부지라 부르지 못하옵고,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하노니... "

홍판서.. 칼.. 32명의 홍길동..

"소자, 서자로 태어나 아부지를 아부지라 부르지 못하옵고,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하노니... "

홍.칼.64명.

"소자, 서자로 태어나 아부지를 아부지라 부르지 못하옵고,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하노니... "

128명, 256명, 512명, 1024명, 2048명, 4K명, 8K명.. 등등등..

마당에는 콩알만한 홍길동이 바글바글 깔려서 모기소리로 합창을 한다.

"소자, 서자로 태어나 아부지를 아부지라 부르지 못하옵고,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하노니... "

이에 더 이상 칼로 썰기 어려워지자, 홍판서, 곳간에 가서 맷돌을 가져다가 마당에 그득한 콩알 홍길동을 모두 쓸어 담아 드륵드륵 갈아 버린 뒤, 그 가루를 물에 반죽해서 가마솥 뚜껑 뒤집어 놓고 돼지기름 두른 후 전을 부쳐 버린다.

이게 바로 홍길동전의 유래다.



'까무러칠만한 이야기'에 대하여

북한이 말하길
'정몽준/김문수/박근혜가 북한에 와서 한 말을 공개하면 온 남조선 사람들이 까무러칠것'
이라고 했다고 한다.

북한.
여러모로 상당히 어이없는 나라.
딱하나 인정해줄건 외교능력.
지난 수십년간의 proven track record. 국제외교 능력으로 볼 때
그냥하는 말이 아니라 빼도박도 못할 증거를 가지고서 하는 말이라고 하는 믿음;;이 생긴다.
북한이 지네 내부적으론 수많은 헛소리를 하지만
대외적으로 하는 발언은 뭔가 진짜인거 같다는 기대감을 불러일으키는
그런 면모가 있으니.

그래서 나는 저 말이 뻥카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결국은 공개를 안할 것이다.
역시 나처럼 뻥카가 아님을 알아본 당사자들이
'내가 거기가서 무슨말을 했더라...'
라는 걸 복기해보고
뜨끔 한 나머지
쟤들이 원하는 것을 퍼주고 나면
약속대로 입을 다물어주는
그런 시나리오가 이미 짜여진 상태인 것이다.

외교관 되고싶으면 대학교에서 외교학과를 전공한다지.
교환학생 제도를 좀 확장해서 북한이랑도 학문적인 교류를 하자.
우리는 정치외교학과 학생들중에 좀 뽑아서 보내고
쟤네는 뭐 IT 같은거 좀 배워가라 그러고
그랬음 좋겠다.

끗.

전두환 사열


분열이 뭐고 사열이 뭐야? 이 어휘들의 뜻을 정확하게 아는 사람?

사람들이 말야, 참 군대에서 쓰는 말의 뜻을 몰라요.

심지어 군인들도 몰라. 한기호도 모르잖아. ㅎㅎㅎ

정확한 뜻을 알려주께. 졸라 헷갈리더라도 참고 잘 들어봐.

사열은 일종의 검사를 하는거야. 군대에서 쓰는 말인데 내무사열, 관병사열, 뭐 이런말 기억 나잖아. 병사들의 준비상태를 지휘관이 검열 하는 거라고.

사열에는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지.

그 중에서 제일 유명한게, 병사들을 연병장에 줄을 딱 맞춰 세워놓고 군악대가 음악을 연주하면서 지휘관하고 중요한 손님(외국의 원수나 다른 부대의 장, 뭐 이런 VIP들 말야.)이 그 앞을 걸어가거나 차를 타고 지나가면서 훑어 보는거야. 경례도 받고 말야.

그리고 또 다른 방식의 사열이 있지.

지휘관하고 중요한 손님들이 한자리에 서 있고, 병사들이 그 앞을 행진하면서 경례하는 거 있잖아. 이게 분열, 분열행진, 열병행진, 이렇게 불리우는 거라고. 보통 분열이라고 하지. 사실 분열이나 열병이나 뜻은 비슷해. 부대별로 나뉘어서 줄지어 있는 걸 분열이라고도 하고 열병이라고도 하고, 그 상태로 행진하는게 분열행진, 열병행진 이렇게 부르는 거지.


<뭐니뭐니 해도 세계최강의 분열행진이라면 북한군이 역시.. >

그러니까, 엄밀하게 말하자면 분열하고 사열은 서로 상충되는 의미가 아니야.

사열의 방식 중에, 지휘관이 움직이는 경우도 있고, 병사들이 움직이는 경우도 있는데, 그 중에서 병사들이 움직이는 것을 분열행진, 그냥 줄여서 분열이라고 부르게 되는 거지.

그러니까 언론에서 "전두환이 육사에 가서 사열을 받았다" 라고 표현한건 앞뒤가 틀린 표현이야. "전두환이 육사에 가서 사열을 했다" 거나, "육사생도들이 전두환 등에게 사열을 받았다" 라고 표현을 해야 맞는 거야.

전두환이 뭐 애들인가? 육사생도들한테 준비상태를 점검 받게? 점검을 하는거지.

그리고 이걸 가지고, 그건 사열이 아니고 분열이라고 주장한 한기호는 육사 나온거 맞아? 나왔으면 아마 기억력이 졸라 구려서 다 까먹었거나, 맨날 땡땡이 친게 거의 확실하지 뭐.

한기호의 인터뷰 : http://www.nocutnews.co.kr/Show.asp?IDX=2166156

뭐 굳이 우호적으로 보자면, 그날 한 행사는 전두환과 기타 손님들에게 육사 생도들이 분열을 통한 사열을 받았다.. 는 식으로 표현 할 수는 있겠지.

오늘의 교훈은.. 말을 좀 똑바로 쓰자 라는 거야. 말의 의미를 비꼬는 것은 썩개인들의 고유한 권한이지 하찮은 언론인이나 정치인 따위들이 그런 짓 하면 안되는 거잖아.




오늘의 썩개 : 열병에 걸려 멘탈이 분열되는 바람에 정신이 사열로 갈라졌다.





2012년 6월 10일 일요일

6.10 기념 왕년 스토리


이런 얘기하면 왕년에 내가 뭐~ 이런 소리 하는 거 같아서 잘 안하려고 했었지만, 이제는 뭐 이런 얘기도 그냥 웃으면서 할 수 있는 상황이 온.. 왔나? 아닌가?

하여간 그래서 87년도 6월 어느날의 얘기를 읊어 보기로 한다.

위트업쓰에 올릴까 내 블로그에 올릴까 하다가 그냥 양쪽 동시 개봉으로.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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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6월 0일 날씨 맑음.

무척 긴 하루였다.

여느날과 별로 다를 바가 없이 날은 초여름의 맑은 하늘이었지만 동기들의 마음속에는 분노만 가득한게, 숨쉬는 대기 속에서도 분노가 맺혀있는 그런 느낌의 날이었다.

아침에 들린 학회실에는 벌써 친구들의 가방이 수두룩했고, 칠판에는 남겨놓은 이름만 그득히 적혀 있었다.

- 오늘은 어디냐?

- 뭐 여기저기 많아. 넌 어디로 가냐?

- 오늘은 글쎄.. 명동이나 한번 나가볼까. 솔직히 난 이런다고 뭐가 바뀔지 모르겠다. 그래도 앉아 있을 수는 없으니까 나가서 구경이나 하지 뭐.

- 넌 그게 문제라고. 맨날 꼬박꼬박 쫓아다니는 넘이 맨날 말은 아무 흥미없다는 듯이.. 그러니까 애들이 널 싫어하지.

- 내비둬라. 그렇게 살다 죽게.

나름대로 날씨 좋다고 흰색 남방에 면바지로 깨끗하게 차려입고 나왔으니, 그 난장판에 끼어서 옷이라도 버릴까 싶어 그냥 심심한 넘 하나 꼬셔서 어디 당구장 가서 하루 죽때릴까 싶기도 했지만, 강의도 몽땅 중단된 마당에 놀고 있자니 맘도 안 편하고 해서 학교앞에 나아가 버스타고 명동 거리로 나가봤다.

물론 습관적으로 가방은 학회실에 던져두고, 내 이름 역시 칠판 한 귀퉁이에 남겨 뒀다.

뭐 별일이야 있으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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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좀 일렀는지 명동 거리는 별일 없었다. 인도가 조금 북적거리긴 했고, 요소요소마다 전경들이 삼엄하게 깔려 있는 거 말고는 평일의 모습과 전혀 다를 바 없는 대도시의 번화가.

잠시 어슬렁 거리고 있자니 심심하기도 하고, 누군가 아는 넘하고 같이 올걸 그랬다 싶기도 해서 여기저기 아는 얼굴이 있나 하고 찾아보기 시작하려던 찰나, 드디어 시작이 왔다.

한번쯤 얼굴을 봤음직한 학생 하나가 하늘로 주먹을 치켜 올리며 "독재 타도 호헌 철폐"를 외치기 시작한다. 여느때와 다른 것은 보행로를 가득 메우고 있던 아저씨들이 일제히 호응을 보이며 같이 외쳐주고 있다는 거.

사실 그런 광경은 언제나 봐도 콧등이 시큰한 게,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우리가 뭔가 잘못하고 있는 건 아니구나 하는 안도감이 아닌가 모르겠다. 저봐, 어른들이, 사회인들이 우리가 하는 일에 동의를 해 주고 있잖아. 전두환이 나쁜놈 맞다고 같이 외쳐주는 거잖아.

함성이 조금씩 힘을 얻음과 동시에 한곳에 몰려 있던 학생들이 일제히 차도로 뛰어 들었다. 순간 차도는 막혀 버리고 차들은 어렵게 유턴을 해서 빠져 나가거나 옆 골목으로 스며들어가면서 그 넓은 대로에 공간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물론 그 공간은 대부분 학생으로 보이는 친구들이 채워나가고 있었고.

최전선에는 각진 얼굴과 쉰 목소리의 특유의 전문 운동권 친구들이라고 누구나 알아 볼 수 있는 한 무리가 자리를 잡고 앉아 버렸고, 일제히 구호를 선창하고 있었다. 그 뒤로 수도없이 늘어선 학생들이 선창하는 구호에 맞춰 주먹을 치켜 올리고 있었고, 그들에게 박수를 보내며 인도에 늘어선 직장인들이 넥타이를 휘날리며 같이 목소리를 맞춰주고 있었다.

저 아저씨들은 오늘 일을 작파하고 나온 거 같은데 저러다가 짤리는 거 아닐까 몰라~ 하는 내 코가 석자인데 남 걱정하기 신공을 휘날리며 슬슬 나도 대열의 맨 뒷편에 가서 자리잡고 상황을 관망하고 있었다.

울 엄마가 언제나 말씀하시길, 앞에 나서지 말라고 했거든.

대열의 앞뒤는 무장한 전경들이 가로막고 있었고 더 이상 공간이 늘어나지 않도록 애를 쓰고 있었지만 시위대는 점점 늘어만 갔고 대열은 점점 더 길어지기만 했다. 거기에 비례해 목소리는 점점 더 도심을 울리고 있었고, 빌딩 벽에 반사되어 메아리까지 치기 시작할 정도였다.

내무부장관 명의로 더 이상 시위 진압에 최루탄을 쓰지 않겠다는 공표가 바로 어제 나와서인지 사람들은 점점 더 대담해지기 시작했고, 오히려 그들을 막아서려는 경찰들이 초라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런데 그 순간, 갑자기 대열이 맨 앞에서부터 갑자기 일어서기 시작했고 통일된 구호가 아닌 아우성에 가까운 잡음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나도 모르게 튕겨 일어나서 무슨 일인가 보려고 하던 차에, 사람들이 갑자기 돌아서면서 뒤로 밀려 오는게 아닌가.

얼레.

나도 황급히 뒤로 돌아서서 밀려오는 사람들에게 자리를 내주려는데, 대열의 뒤를 막고 있던 경찰들이 갑자기 무릎을 꿇고 방독면을 꺼내 쓰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아 씨바.. 이 새끼들 최루탄 안 쏜다더니..

최루탄을 장착해서 쏘는 총들을 안들고 있다고 해서 안심을 했던게 불찰이라면 불찰일까, 갑자기 옆구리에 찬 가방에서 새까만 사과탄들을 막 꺼내더니 던지기 시작한다.

총에 끼워 발사하는 SY-44와는 달리 사과탄 역시 터지는 순간의 폭발력이 위험하기 때문에 최대한 공중으로 높이 던져서 허공에서 터지면서 흰색 최루 분말이 퍼지도록 해야 하는게 기본이다.

그런데 그걸 밀집한 군중 속에다가 마치 배구공 토스하듯이 막 슬쩍 슬쩍 던져 넣는 것이다. 저러다가 눈에라도 맞으면 실명하는데..

멀리서 날아오늘 Sy-44 탄이야 눈으로 보고 피하기라도 하지, 군중속에 파묻혀서 옆으로 한걸음 가기도 힘든 상황에서 도대체 어쩌라고 그러는지 모르겠다. 거기다가 겁도 많고 소심해서 대열의 맨 앞으로도 못가고 뒷쪽에서 얼쩡거리던 내가 졸지에 대열이 180도 뒤로 돌아를 시행하면서 얼결에 최선두가 되어 버렸고 그 앞에서 가방에서 사과 꺼내 던지듯이 마구 집어 던지는 사과탄을 피할 도리는 애초에 없던 거다.

완전 망했군.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하고 어디를 헤치고 도망가야 하나를 살펴보는데, 갑자기 바로 머리 위로 깜장 사과가 한개 날아온다.

앗, 씨발~

반사적으로 고개를 숙이며 팔을 들어 머리를 보호하는 순간 빵~ 하고 사과탄이 터지면서 온 몸에 하얀 가루를 뒤집어 썼다. 숨이 컥 막혀 오는 것을 참고 튀어 나가 전경 두어명을 확 밀쳐 버리고 옆 골목으로 튀어 달아났다. 그러는 내 뒤로 줄지어 도망오는 수많은 학생 시민들..

한참을 골목으로 달리고 있는데 누군가가 헐떡거리면서 내 어깨를 친다.

누군가 하고 돌아보니, 어떤 여학생 하나가 아무 말 없이 나한테 휴대용 티슈를 하나 내민다. 뭔가 하고 받아 들었더니, 그 여학생은 벌써 도망가 버리고 나만 어영부영 하면서 서 있는데, 도대체 이 티슈를 왜 날 준건가 하고 내 몸을 살펴 봤더니 오른쪽 옆구리부터 허리 아래까지 옷이 온통 피투성이다.

아픈 것도 모르고 잘 도망치다가 피칠갑이 되어 있는 내 몸을 발견하니까 도대체 어디가 아픈지도 모르겠는데, 온 몸이 다 아프다. 나 죽는 건가..

결국 저 멀리서 백골단 애들이 쫓아오는데, 더 이상 도망도 못 가겠어서 어딘가에 숨어야 겠다고 생각하고 두리번 거리는 데, 골목길에 있던 다방 하나가 막 철제 셔터를 내리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염치 불구하고 내리는 셔터를 막고 셔터 안으로 굴러 들어가 본다.

어두컴컴한 실내에 몇몇 사람들이 앉아서 담배를 피고 있었는데 내가 뛰어 들어가니까 내 몸에서 날리는 가루 때문에 사람들이 기침을 시작한다. 난 뭐 이젠 무감각할 수준인데..

눈물 콧물 질질 짜면서 두리번 거리고 있었더니, 여종업원이 다가오다가 내 옷에 묻은 피를 보고 비명을 지른다. 씨바..어쩌라고..

저쪽 구석에 앉아 있던 어쩐 아저씨가 벌떡 일어나더니, 나한테 다가와서 내 팔을 붙들고 이리저리 둘러 보더니, 나를 자기 자리로 끌고 간다. 그러면서 주인한테, 여기 구급약 같은거 있으면 좀 가지고 오고, 물수건도 좀 가지고 오라고 시킨다.

비명을 지르던 여종업원이 하얀 약통하고 물수건을 들고 오고, 아저씨는 내 팔을 이리저리 보고 피묻은 웃도리를 들쳐 보고 하더니 피식 웃는다.

- 뭐 크게 다친 줄 알았더니 팔만 다쳤네. 근데 왜 이렇게 피가 많이 나.

- 사과탄을 맞은거 같아요.

- 사과탄이 이렇게 쎈가?

- 바로 머리위에서 터졌거든요.

- 그걸 팔로 막았고?

- 그런거 같은데요.

- 머리 안 터진게 다행이다 야.

그러면서 대충 물 부어가며 팔에 피를 닦아 내고 보니, 오른팔꿈치에 빵꾸가 뽕뽕 뚫려 있고 거기서 아직도 피가 흘러 나오고 있다. 사과탄이 바로 머리 위에서 터지고 그걸 피하겠다고 고개를 숙이면서 오른팔로 머리를 감쌌더니 사과탄 파편이 몇개 팔꿈치에 박혀 버린 거다. 거기서 흘러내린 피가 아무 생각없이 달리던 상태에서 오른쪽 옆구리에 흘러 내렸고, 흰 옷이라 피가 더 선명하게 보인 탓에 크게 다친걸로 보였고, 그걸 본 여학생이 나한테 피라도 닦으라고 티슈를 내민거고..

아 그렇게 된거였구나.

ㅎㅎㅎ, 근데 피가 철철 흐르는데 겨우 피닦으라고 티슈를 내밀다니.

어찌되었건 간에 상황이 좀 정리되고 나니까, 갑자기 팔이 욱신거리면서 아파온다. 피도 어지간히 닦아 내고, 소독약 바르고 구급약통에 있던 붕대로 팔꿈치를 대충 감았는데 느낌이 안 좋다. 자꾸 오른팔이 부어 오르는 느낌.

- 야, 너 그래가지고 오늘은 안되겠다. 그냥 집에가라.

- 그래야겠네요.

- 집은 어디야?

- 안양이요.

- 지하철 타야겠네. 1호선인가?

- 4호선 타고 사당에서 내려서 버스 타는게 더 빨라요.

- 지하철 역에 경찰 깔려 있을텐데 너 그 꼴하고 가면 바로 잡혀 가지 않겠냐?

- 그러겠죠.

- 학교는 어디야?

- **대요.

- 참내.. 세상이 어찌 되려고 한참 공부해야 될 넘들이 다 뛰어나와 이 지랄이야.. 대머리 개새끼 같은넘..

- ......

- 니네 친구도 하나 지금 병원에 있다며.

- 예.

- 죽을 거 같다 그러더만.

- 그렇겠죠.

- 어쨌거나 내가 데려다 주마. 지하철 태워주면 되잖아.

- 고맙습니다.

- 가자.

나름대로 그 다방에 앉아 있는 동안 얼결에 대접을 받았다. 약을 가져다 준 여종업원하고 주인 아줌마까지 와서, 혀를 끌끌 차며 치료를 해 주고, 시원한 콜라까지 한잔 가져다 주고, 다른 자리에 있는 손님들까지 다 같이 이 정권을 욕하면서 학생들을 칭찬해 준다.

이렇게 사람들이 다들 바라고 있는데, 이렇게 사람들이 모두 나서서 그만 하라고 그러는데, 그래도 세상이 바뀌는 건 참 힘든 일인가 보다.

자꾸만 팔이 욱신거린다.

이름모를 아저씨가 나를 옆에 붙들고 데리고 간다. 지하철 역에 가보니 입구부터 전경들이 삼엄하게 깔려 있고, 드나드는 사람들을 막 검문을 하고 학생으로 보이는 애들은 막 연행하고 있다. 더 이상 모여드는 것을 막자는 거겠지.

그걸 보면서 아저씨가 갑자기 내 뒤통수를 딱 때린다.

- 너 이새끼,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니네 엄니가 얼마나 걱정하는 줄 알아? 이게 돈 들여서 대학 보내노니까, 데모질이나 하고 피나 철철 흘리고 다니고, 이 삼촌이 바빠 죽겠는데 너 잡으러 다녀야 겠냐?

막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면서 나를 야단치는 척 하면서 막 끌고 지하철 역으로 들어간다. 그 기세에 눌려서인지 전경들도 우리를 감히 막아 서질 못한다. 뭐 삼촌에게 잡혀 끌려가는 대학생을 막아서 뭐하겠나 싶은 심정이었을까?

나 역시, 고개 푹 숙이고 암소리 못하고 질질 끌려간다.

그렇게 지하철 역안으로 들어와 사당행 지하철을 탄다. 지하철이 도착하자 아저씨가 웃으면서 얘기한다.

- 다른건 모르겠고, 너 빨리 집에가서 집근처 병원가서 치료좀 해라. 아까 보니까 파편도 몇개 박혀 있는 거 같고, 최루탄 가루가 상처에 들어갔으니 좀 안 좋을 거 같더라.

- 고맙습니다.

- 그리고.. 니들 맘 다 이해하는데, 다치면 너만 손해야. 몸조심해라. 니가 다치면 니가 문제가 아냐. 너 바라보고 있는 부모들 심정을 니가 어찌 알겠냐.

- .....

- 잘가라.

그렇게 나는 그 아저씨의 이름 석자 물어볼 생각도 못하고 신세만 지고 헤어졌다. 아마 지금쯤 환갑은 되셨을 거 같긴 한데.. 뭐하는 사람인지도 모르고 어디 사는 사람인지도 모른다. 그저 내 기억속에 지나가던 한사람의 시민일 뿐.

그리고 사당에 도착했는데, 피투성이가 되어서 버스 타기도 그렇고 해서 택시를 잡아 탔다.

기사는 내가 대낮부터 어디서 쌈질하다가 다쳐서 온 넘인걸로 보는 듯 했다. 왼손으로 붕대감긴 오른 팔꿈치를 잡고 앉아 택시를 타고 가는데, 라디오에서는 연신 시내의 상황을 중계한다.

기사분이 탄식하듯이 뇌까린다.

- 사람들이 말야. 저렇게들 좀 그만하라 그러면 그만하는게 순리지. 권력을 한번 잡으면 거기에 무슨 꿀을 발라 놨는지 그걸 또 자기 친구한테 주려고 저렇게 고집을 피우나. 도대체 몇이나 더 죽어 나가야 포기할 건지, 참 징하네.. 징해..

듣고만 있기가 그래서 한마디 보탠다.

- 아저씨, 저도 저기 있다가 온거에요.

- 뭐? 그럼 그게 경찰한다 맞아서 다친거야?

- 사과탄에 맞았어요.

- 어.. 그럼 큰일이잖아. 병원으로 가야 되나?

- 아니, 별로 심하진 않아요. 그냥 병원가서 치료좀 받으면 될거에요. 팔 움직이잖아요.

그러면서 오른팔을 내밀어 주먹을 폈다 쥐었다 젬젬을 해보인다.

- 아, 그 사과탄이라는게 수류탄 같은거 아닌가?

- 하하, 그렇게 쎈건 아니고 그냥 안에 최루가루만 잔뜩 들어 있는 거에요.

- 아, 그래서 니가 타니까 차 안에 매운 냄새가 난 거구나. 그나마 다행인데 그래도 그렇게 피가 많이 났으니 뭐 가볍게 볼건 아니지. 어디 병원으로 데려다 줄까?

- 안양 시내에 아무데나 외과 병원에 내려 주세요.

조그만 외과병원에 도착해서 차를 세워주길래 주섬주섬 지갑을 꺼내니, 기사분이 웃으면서 얘기한다.

- 마, 나도 거기 못 나가서 미안한 사람이다. 넣어두고, 그냥 내려. 치료비도 내야 되잖아.

- 그래도 차비는 드려야죠.

- 됐다, 마, 학생이 무슨 돈이 있다고.

- 그래도.

- 아니다. 내가 맘이 안 편해서 그래. 그냥 빨리 가라.

- 고맙습니다.

결국 택시기사분에게도 신세를 진다. 도대체 내가 한게 뭐가 있다고 이런 대접을 받나 싶어 오히려 맘이 더 무거워 진다.

병원에 들어갔더니 또 옷에 묻은 핏자국 때문에 치료실이 소란스러워 지면서 순서를 바꿔 나부터 붙잡고 처치실로 데려간다.

젊은 의사는 내 팔을 붙들고 치료를 하면서, 이런 저런 얘길 물어본다. 아는 대로 답을 해 줬더니 혀를 끌끌 차면서, 그래도 활기차게 얘길한다.

- 쭉 보니까, 얘들 얼마 안 남았어요. 양보 할거에요.

- 양보하는 거로는 부족하죠. 사람이 죽었잖아요.

- 그래도 그 정도면 되는 거죠. 나도 학교 나온지 얼마 안되었지만, 대학생들만 한다고 되는 건 아니거든요. 사람들이 일제히 욕을 하잖아요. 시내에서 학생보다 직장인들이 더 많이 나왔다면서요. 이럼 된거지 뭐. 그건 그렇고, 파편이 몇개 있는 거 같은데 엑스레이 찍어보고 뺄 수 있는데 까지는 다 뺍시다. 그거 놔두면 별로 안 좋으니까.

- 그러죠.

대충 처치를 마친뒤 엑스레이를 찍고, 간호사가 웃도리를 벗어 달라고 그러더니 대충 헹궈다 주기까지 한다.

- 핏자국이 다는 안 지워져요. 집에 가서 표백한번 해야 될 거에요.

- 그런데 원래 병원에서 이렇게까지 해 줘요?

- 의사선생님이 해 주래서 해 주는 거에요. ㅎㅎ

- 고맙습니다. 민폐만 끼치네요.

- 그렇게 생각하지 말아요. 우리도 미안하니까.

기다렸다 나온 엑스레이 필름을 보니까 큰 조각이 서너개, 깨알보다 작은 조각이 대여섯개가 보인다. 우어.. 저걸 다 빼려면 완전 살을 헤집어야 되겠네..

의사는 역시나 의사답게 웃으면서 이거 보이는 건 다 빼자고 하면서 마취 해줘야 되냐고 묻는다.

- 마취 안하고 빼면 더 빨리 나아요?

- 뭐 굳이 그런건 아닌데, 해도 되고 안해도 되고.

- 참아 볼테니까 그냥 빼주세요.

결국 그렇게 호기를 부리면서 마취 주사도 안 맞고 생살을 째고 파편을 막 뺀다. 씨바.. 마취 주사 놔 달라고 그럴걸.. 졸라 아프다. 별로 깊이 박히지도 않았는데도 하나하나 건드릴 때마다 소름이 쫙쫙 끼칠 정도로 아프다. 제일 깊이 박힌건, 살을 뚫고 들어가 뼈에 흠집을 낼 정도로 박혀 있다. 그걸 끄내는데 마치 뼈를 긁어 내는 화타의 치료를 바둑 두며 참아낸 관우의 입장이 된 거 같은 기분까지 든다.

저렇게 조그만 조각들이 내 살 속에 박히다니.. 줸장..

결국 아주 작아서 빼기조차 힘든 건 포기하고, 어지간히 보이는 것은 다 빼버렸다.

- 몇개 더 있긴 한데, 너무 작아서 빼기 힘들어서 놔둬야 겠어요. 이거 좀 지나면 그냥 밀려 나올 거에요. 그리고, 독성 때문에 팔이 좀 많이 부을 거고, 한 일주일 동안은 팔 못쓰겠네. 염증 생기지 말라고 항생제 처방좀 해 줄거고, 내일하고 모레 이틀 정도는 병원와서 항생제 주사좀 맞고 붕대좀 갈고. 그러면 별 문제 없을 겁니다. 고생했어요.

- 뭐 생각보다는 덜 아프네요.

끊임없는 허세.

- ㅎㅎㅎ 안 아파서 아까 그렇게 땀을 흘렸어요? 아팠을 건데~

- 아프긴 아팠죠. ㅎㅎ

- 병원비는 내가 안 받고 싶은데, 나도 월급받는 처지라 그럴 수는 없고.. 약값만 내고 약 타가세요.

- 말씀만이라도 고맙습니다. 그냥 치료비도 내고 싶은데요.

- 아, 그건 필요없고. 당분간은 시내 나가지 말고 좀 쉬어요. 덧나면 골치 아프니까. 술담배 하지 말고.

- 잘 될진 모르겠습니다.

그러고 나서 약을 받아들고 (당시엔 의약분업 이전이다. 병원에서 약도 주던 시절이라는 뜻.) 병원을 나섰다.

집에갔더니 누나가 와 있어서, 이런 저런 사정 얘길 했더니 막 팔꿈치를 꾹꾹 찔러 본다.

- 진짜 여기에 최루탄을 맞았단 말야?

- 진짜라니까~

- 아이구~ 우리 막내가 큰 일 했네.

- 큰일은 개뿔. 아파 죽겠구만.

그 때 이미 오른팔이 붓기 시작해서 손가락까지 퉁퉁 부은 상태. 팔을 구부릴 수가 없어서 밥도 왼팔로 먹어야 되는 상태가 왔다.

- 기분인데 오늘 둘이 영화나 보러 갈까?

- 좋지.

그렇게 간만에 홀가분한 기분이 되어서 누나하고 둘이 나가 영화를 보고 놀다가 거의 자정이 다 되어서 집에 돌아왔더니..

아파트 현관문을 여는데 전화벨이 계속 울리고 있다.

- 여보세요?

- 성호니?

- 응. 누구냐?

- 너 살아있니?

- 살아있으니까 전화받지.

- 그러면 학회실에 이름을 지웠어야지.

- 아, 시내 나갔다가 좀 다쳐서 바로 집으로 와서 치료받고 지금 들어오는 길이야.

- 다쳤어? 많이? 심각해?

- 별건 아니고.. 오른팔을 좀 다쳐서 당분간 당구는 못 치겠는걸.

- 도대체 넌..

말을 채 잇지 못하고 전화를 끊어버린 친구는 신입생 시절 서로 약간 특별한 감정을 가지고 있던 사이인 어떤 여학생.

나중에 알고보니, 내가 이름 적어놓고 가방까지 놔두고 나가서 돌아오지 않자, 친구들 사이에서는 난리가 났던 거였다. 그날 우리 과에서 나 포함해서 네명이 돌아오질 않았는데, 나 말고 세명은 모두 구치소에 있는게 확인되었고, 나는 그나마 구치소에서도 또 시내의 병원에서도 발견할 수가 없어서, 친구들은 좀더 살벌한 상상을 했던 것이었다.

도심의 시위가 워낙 과격해서, 여럿이 다치고 중상을 입은 사람도 속출하고 경찰도 다수 다치는 상황에서 흔히 나타날 수 있는 극단적인 상상들..

얼결에 내가 그런 상상의 주인공이 된 상황.

그 뒤로 앉아서 계속 내가 아는 학교 친구들의 모든 전화번호로 다 전화 걸어서 내 상태를 알려 주느라 시간이 꽤 걸렸다.

그렇게 어느 초여름의 긴 하루는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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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폰 삐삐도 없던 시절, 내가 일부러 과 사무실에 전화 걸어서 내 상태를 알려 줄 수도 없었고 하니, 친구들은 다 내가 "실제로 죽었다" 라고 생각을 한 모양이다.

지금와서는 웃긴 일이지만 당시에는 진짜 심각했던 상황이다.

그런 날들이 지나고, 6.29일에는 노태우의 항복 선언이 나오고 7월 5일에는 이한열이 사망하고, 이한열 사망 이후로 또 한참 시끌벅적하고..

내 젊은 날의 한 때는 그렇게 이 사회가 가져가 버렸다.

남은 것은 오른팔을 못쓰던 몇주동안 왼손으로 당구를 쳤더니 왼손 당구가 120까지 올라가 버렸다. 지금도 아마 왼손 당구는 어지간한 사람한테 안 질걸~

당시에 내가 뭘 느꼈던지간에, 이제는 그런 모든 감정들 조차 아련한 추억속에만 살아 있을 뿐 무덤덤해져 버렸다.

그러나 이 사회는 그 때에 비해서 별로 나아지지도 않은 듯. 물론 뒤져보면 그 시절보다야 훨씬 더 발전한 상태이지만, 체감지수는 별로 다르지 않다.

어떤 면에서는 오히려, 전두환 시대보다 더 후퇴한 박정희 시대로 가고 있는게 아닌가 걱정이 될 정도로.

그렇다면 도대체 난 도대체 뭘 위해서 내 인생의 한때를 저렇게 고통스럽게 보냈던 것일까?

솔직히 고백하자면 억울하기까지 하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라는 거거든.

계속 우리가 피를 거름삼아 주지 않으면 바로 말라 죽는 거거든.

하여간 졸라 비싼 시스템이다. 민주주의라는 놈은.

그 값을 치르지 않으면 누릴 수가 없을 정도로 비싼 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