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에 왠 서면 인터뷰라는 것을 했단 말이지.
서면인터뷰라는게 꼭 뭐 가카나 상득이흉 정도의 레베루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더라구;;험험;;하튼 머;;
그 인터뷰 항목중에 "당신의 직업에 만족하십니까?"
뭐 이런 질문이 낑궈 있었슴.
이 상투적인 질문을 보는 순간 아주 먼 기억으로 빽.
"시인이 되고 싶었다."
국민학교 4학년? 6학년? 잘 기억은 안남.
그 겨울방학 숙제중에 지랄 같은 같은 반 후렌드들 숫자만큼 -무려 60명이다-
동시를 지어서 그림을 그리고 60장을-무려 60장이다-똑같이 만들어 오라는 거야.
오해는 하지 마.
당시에는 노떼캐논도 없고 프린터, 컴퓨터도 없었지.
순수가내수공업 수준의, 70년대 어두운 백열등 밑에서 민중해방을 위해
찌라시를 등사하는 심정으로 그렇게 그렇게 60장 도화지를 메꿔가는 거였어.
잠시 복기해보자. 잘 될까 모르겠다.
자 대략 이런 시였던 것으로 기억난다.
어디서 배꼈는지 창작인지는 모른다.
중요한 것은 60장이라는 과도한 업무량의 효율적 처리를 위하여
짧고 굵게 대량생산 대량처리가 가능한 능률적 시와 그림
남들이 겨울 내내 애들 답지 않는
사랑과 자연과 부모님에 대한 은혜로 60장을 그려왔을 때
극도의 리얼리즘을 실현한 이 짧은 시 하나로
칭찬을 받고 말았다는 것.
'참 순수하구나.'
그 순간 나의 꿈은
시인이 되는 거다.
푸르른 하늘을 보고
그 푸름을 바늘로 뽁 찌르면
푸른 눈물 한 방울 푹 떨어질
감수성을 쌓아야 했지.
노력 따위는 없다.
시인은 타고 나는 것.
그렇게 그렇게 수 십년이 흐르고
그 얼척없던 내 엄청난 재능은
이렇게 이렇게 변질 되어왔고
다시 변질 되어 가고 있다.
하지만 나에게 드립은 시다.
그리고 나이 40넘게 처 드시고
마눌도 비웃고 트친도 비웃고
스스로 부끄러워 오프에서는 공개 못하는
또 다시 시라쓰고 남들은 썩개라 비웃는
꿈을 시작하려 한다.
그때 내 담임 선생님 이름이
백열등처럼 번뜩인다.
오*자 선생님.
지옥이나 가시라.
그림이 폭을 넘어서는 바람에 전체 폭을 좀 늘렸삼. 난 왜 이런걸 이렇게 잘할까...
답글삭제굿굿-_-굿굿~
삭제서면 인터뷰는.....서서 인터뷰 하는거임? 흠. 가혹하군.
답글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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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무화홧. 나 이릉거 넘조아~
흠. 저기 김빙삼옹이 곧휴가 서면 인터뷰하는 거구 안 서면 안하는 것이라구 했슴-_-굿굿. 오랫만에 독투에 올리던 글같은 걸 쓰니 기분이 좋아짐.캬캬캬캬캬캬캬컄.
삭제말 나온 김에 김빙삼옹도 여기 합류하시라고 권해 보삼.
삭제에잉. 흉이해야지-_-난팔로두안되어있슴;;;ㅋㅋㅋ
삭제서면 인터뷰는 서면에서 하는거 아님? 부산엔 언제 다녀오셨음? -_-
삭제서면 인터뷰는 안서면 못하는거임.
답글삭제40 넘어서 서면 인터뷰를 했다는 사실로 존경받아야 함.
흠-_-흠;;;
삭제사실;;;잘;;;줵일.
줴길 뭔 댓글다는데 보안이 청와대 입장 수준이라 댓글다는동안 위에서 쳐 버렸네...ㅡ.ㅡ
삭제30년이나 지난 부산 서면 인터뷰를 여기서 보게 될 줄이야!!
답글삭제그나저나 전깃불-_-그림이 꼭 곧휴같아 털 몇 개 난.
리얼해 역시 리얼리즘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