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8월 19일 일요일

남사스런 군대얘기


아시다시피 군에 입대하게 되면, 의식주 모든 것을 군대가 책임을 져 준다. 사실 안 그러면 어떻게 군생활을 하겠는가, 당연한 얘기지.

신병소집에 응해 들어가보면, 군복과 속옷, 전투화를 주고 박스를 한개 준다. 거기에 입고 들어온 사복과 소지품을 몽땅 넣어서 집으로 보내라는 거다. 박스에 넣어주면 군사우편으로 집에 도착하게 된다. 맘 약한 부모님들은 그 박스 붙들고 한번씩들 울기도 하고..

사실 인간이 생활하는데에 그렇게 많은 종류의 물건이 필요 없기도 하다.

기억을 더듬어 봐도, 군복, 속옷 상하의, 겨울용 내의 상하의, 군화, 활동화(이건 운동화다.), 수건, 칫솔, 치약, 면도기, 뭐 이 정도면 살아가는 데 지장은 없다. 식당가면 밥주지, 총도 있고 군장비 다 있지, 행정병 같으면 처부 사무실 가면 용품 다 있지..

굳이 더 필요하다면 기호품 정도 뿐이다. 술, 담배, 당분이 들어 있는 간식 정도..

사실 이런 물품들은 군대에 보급하는 것도 장난이 아니다. 워낙에 머릿수가 많으니까 그런거지. 매일 매일 소비되는 식료품들도 장난 아니고 의복이나 침구류 같은 것도 규모가 어마어마하다.

내가 근무하던 곳은 사단 사령부였기 때문에 휘하에 장교사병 합쳐서 만이천명 정도가 되는데, 사람 만명이 먹고 싸고 일하고 잘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소비되는 물자의 양으로 보면 진짜 입이 딱 벌어지기 마련이다.

여담이라면, 사실 육군규정에 보면 사병들에게도 알콜음료, 그러니까 주류의 보급량이 규정되어 있었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지만..)

한달에 2리터였던가.. 그런 수준인데 그 물량이 피엑스에 공급이 된다. 물론 술은 공짜로 주는게 아니라, 그 분량을 피엑스에서 구매해서 먹을 수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조건이 붙어 있다. 사단장 재량으로 사병들을 상대로 주류를 판매하는 것을 금지시킬 수 있다는 거다. 그래서 거의 대부분의 부대는 다 주류판매가 금지된다.

그럼 그 술은 다 어디로 가나? 장교들이 박스떼기로 사간다. 세금이 붙지 않은 군납용 주류가 얼마나 싼지는 다들 들어보셨을 거다. 특히 오래된 고참 하사관 집에 가보면, 한 십년은 묵었을 것 같은 맥주가 짝으로 쌓여있기도 하다. 이삿짐 나르러 갔다가 맥주가 하도 오래되어서 병 안에 침전물이 생긴것도 본 적이 있다.

어찌되었거나 그 얘기 하려는 게 아니고..

문제는 여군들이다. 민망한 얘기지만, 여군들이 사용할 용품도 100% 군대에서 보급이 된다.

병사들이야 전부 다 그냥 주지만 장교들은 월급을 받는다. 따라서, 그냥 주는게 있고, 쿠폰을 줘서 교환할 수 있는 것들이 있고, 자기 돈으로 사야 하는 것들이 있다. 속옷 같은거 100% 다 군납품만 쓰는 장교들 거의 없다. 있다면 진정한 군인정신으로 무장한 사람이겠지.

그런 식이니, 여군용 군납품들은 거의 구경하기 힘들다. 대부분 쿠폰으로 주거나 해서 알아서 바꿔온다. 그런데 사단쯤 되면 사령부 각 부서에 여군장교나 하사관이 가뭄에 콩나듯 한두명씩 있기 마련이거든. 만여명 속에 서너명. 이 사람들 보급품을 배분해야 되는데, 그게 꽤나 귀찮은 일이기도 해서 군수처나 관리부에서는 그냥 쿠폰으로 처리하거나 돈으로 처리하기를 선호했던 기억이 난다.

그러던 어느날.. 뭔가 잘못되었는지, 군수처 담당계원이 한숨을 푹푹 쉬고 있길래 뭔일이냐고 물어봤더니..

여군용 생리대가 보급이 나왔다는 거다. 그래서 그냥 갖다 주면 되지 뭘 고민이냐고 물었더니.. 손가락으로 어딘가를 가리킨다.

손끝을 따라가서 봤더니.. 가로세로 1M 씩은 됨직한 이따시만한 박스에 검은 글씨로 "생.리.대" 라고 찍혀있고, 자랑스러운 검은 독수리 마크에 "육.군" 마크까지 찍혀 있다.

- 저게 뭐냐?

- 생리대.

- 그러니까 저게 몇명분이야?

- 네명분.

- 몇년치냐?

- 평생쓰지 않을까?

아니 도대체 사단 사령부에 예하부대 다 합쳐도 여군이라고는 너댓명 밖에 없는데, 저렇게 큰 박스를 보내면 어쩌자는 건가?

뭔가 잘못 보낸 거 같아서 확인해 봤는데, 잘못되긴 잘못 되었는데 마감이 다 끝나서 반납은 안 받으니까 알아서 하라는 얘기였던 거다. ㅎㅎㅎ

뭐 어쩌겠나. 그냥 전화해서 가지고 가고 싶은 만큼 가지고 가라고 하는 수 밖에. 그래서 군수처 문병장은 일단 그중 제일 만만하고 잘 아는 부관부 김중사에게 전화를 했다. 와서 필요하신 만큼 가져 가시라고.

그랬더니 돌아온 답변은.. 나 그거 안써. 다른 거 써.

그럼 다른 분들은 어떨까요? 하고 물어보니까... 다른 애들도 그거 안 써. 누가 군납품 쓰냐? 멍청아.

그럼 이걸 도대체 어쩌면 좋을까요? 했더니.. 니가 알아서 니네 집에 가져가든 말든 맘대로 해라. 뚝.

결국.. 이 난감한 사태는 참모들에게까지 알려졌고, 그거 어따 가져다가 팔 데 없냐는 둥, 그거 군인가족들한테 돌리면 어떻겠냐는 둥, 요즘 군납 생리대 아무도 안 쓰는데 무슨 개소리냐는 둥, 한참 난리를 떨더니..

군수참모가 결국 깃대를 잡고 나섰다.

- 내가 알아서 처리할테니 신경 꺼, 이 새끼들아!!

들리는 후문으로는 짚차에 그 박스를 싣고 읍내에 나가서 각 마을 부녀회관을 돌면서 선심을 팍팍 쓰고 왔다고 한다. 댓가로는 뭘 받았을까..

물론 그 와중에도 군수처 문병장은 잽싸게 한 박스를 챙겨 놨더라. 뭐하러?

그게 행정병들 책상에 보면, 가로세로 5센티 정도로 해서 네모난 천을 테잎으로 붙여 놓고는 한다. 모나미 153 볼펜이 볼펜똥이 하도 나와서 서류에 자꾸 묻으니까 볼펜 촉을 닦기 위한 용도였다. 생리대를 3등분해서 자르면 딱 그 용도로 쓰기 좋은 사이즈거든.

결국 사단 사령부 각 처부의 거의 모든 행정병 책상 한쪽 귀퉁이에 육군용 군납 생리대 조각이 한개씩 다 붙어 있게 되었다는..

일부 취향이 독특한 고참병사들은.. 땀 흡수를 돕는다는 핑계로 하이바(군용 헬멧을 보통 이렇게 부른다.) 안쪽에 앞뒤로 하나씩 붙이는 것도 봤다. 그게 꼭 땀흡수를 돕는 용도였는지는 의문이지만..

그런 남사스러운 얘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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