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범죄자들이 그렇듯이 처음부터 그럴 생각은 절대 아니었다.
처음에는 그저, 손님들이 오실 거니까 수박밭 가서 수박좀 몇통 사오라시는 아버님의 명을 받자와 수박을 사러 갔을 뿐이었다.
동네 어귀를 좀 벗어나면, 탁 트인 평지가 나오고 거기에 너른 수박밭이 있어서 매년 그 밭에서 나오는 수박으로 동네사람들 모두가 더위를 이기던 그런 좋은 수박밭이었고, 밭의 주인 할배도 워낙에 마음씨 좋은 분이어서 한덩이 값을 내면 두덩이를 주던 그런 분이었다.
거름을 튼실하게 주고 밭 관리를 워낙에 정성스레 하시던 분이라 그 할배의 수박은 달기로 소문이 났었고, 옆마을에서도 와서 사가곤 했던 그런 곳이었다. 장성한 자식들은 모두 서울로 떠나고 할매도 일찍 저 세상으로 보낸 뒤 사는 낙이라고는 수박밭을 가꾸고 그 밭에서 나온 수박을 달고 맛나게 먹어주는 사람들의 인사를 받는 것 밖에 없던 순박한 할배.
그 수박밭 한 가운데에는 생뚱맞게도 커다란 미류나무가 한 그루 서 있었고, 그 나무 그늘에 원두막이 있는 바람에 지나가던 사람들도 거기에 잠시 멈춰 한 여름에 길 가느라 등에 배인 땀도 들이고 가곤 하던 곳. 밭 근처에 있던 할배내 집 마당의 우물에서 파이프를 연결해서 원두막에다가 설비를 해 놓은 덕분에 원두막에서는 시원한 물도 콸콸 나오던 그런 훌륭한 천연의 휴게소 역할을 하던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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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 사진은 기사중 특정 사실과 전혀 관계가 없으며 대놓고 서리해온 사진임을 인증함.> |
그 날 역시, 친구들 서넛을 옆에 거느리고 보무도 당당하게 원두막을 향해 걸어갔다. 주머니에 수박 댓통 값이 들어 있으니 당당한 고객의 자격이지 않은가.
우린 또 쪼잔하게 밤중에 수박 껍데기 머리에 쓰고 몰래 기어가서 수박 훔쳐먹고 그런 짓은 안하던 통큰 시골아이들이었으니까..
근데 웬걸, 원두막에 도착해보니 늘상 거기서 손에 파리채 들고 베잠벵이 입고 주무시던 주인 할배는 어디로 마실이라도 가셨는지 보이지가 않는 거였다.
"얘들아, 어쩔 수 없다. 일단 기다려보자. "
그러고 나서 원두막에 앉아서 누워서 뒹굴뒹굴하고 있는데 영 안오신다. 어디 멀리 가셨나 보다. 결국 우리가 가져갈 분량의 수박을 잘 익은걸로 골라 따다가 다라이에 시원한 새 물 받아놓고 넣어뒀다.
그래도 안오신다.
결국 기다리다가 갈증도 나고 해서 시원한 수박 하나를 원두막 기둥 옆 틈새에 꽂혀있던 부엌칼을 꺼내 쫙 쪼개서 같이간 친구들하고 해치워 버렸다.
"아, 이거 어쩌지? 할배 오시면 우리가 먹은 것도 값을 내야 될 거 같으니까 껍데기는 숨기자. "
잔머리를 막 쓰면서 우리가 먹어치운 한통의 수박에서 나온 껍데기는 증거인멸 작업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그래도 안 오신다.
"아, 덥다. 등목이라도 한판씩 할까?"
친구들은 차갑다고 소란을 막 떨면서 돌아가메 한 명씩 시원하게 등목까지 했다. 그래도 안 오신다. 슬슬 잠이 온다.
원두막에 너댓명의 아이들이 널부러져 곤하게 잠에 빠진다. 여름만 되면 어디 장난거리 없나 하고 밤과 낮을 가리지 않고 불철주야 몰두하던 아이들이니 피곤할 만도 하다. 그렇게 한잠씩들 늘어지게 자고 일어나도 할배는 안 오신다.
결국, 집에서 기다리실 아부지 생각에 더 이상은 지체할 수 없다는 효심어린 생각이 머리속에 떠오르고, 우리는 교활하게도 이건 어쩔 수 없는 사고라고 합의를 보고 우리가 다녀간 흔적을 정교하게 지운 뒤, 차갑게 식은 수박들을 한통씩 들고 원두막을 벗어났다.
"근데, 너 그 수박값은 어쩔거냐? "
순간 사악한 생각이 발동한 나는 호기롭게 외치고 말았다.
"어쩌긴 뭘 어째, 그냥 꿀꺽 하는 거지. 우린 원두막 가서 돈주고 이 수박 사온거야. "
"그래도 될까?"
"안될건 또 뭐야~ 입이나 다물어. "
그렇게 음모를 꾸미고 집에 도착해 보니 벌써 몇몇 손님들이 와 계시고 엄니는 수박을 심어서 캐 왔냐고 야단을 치신다. 그래도 찬물에 담궈서 시원하게 만들어서 가지고 왔노라고 자랑을 하고, 수박값 얘기는 아예 꺼내질 않고 눈치를 본다.
마루에 앉아 계시던 아부지께서 물어 보신다.
"그래, 수박은 잘 사왔냐?"
"네~~~"
"수박값은 잘 드렸고?"
"네~~~"
"음홧홧홧.. 가소로운 녀석.."
아부지가 설마 눈치를 채신 것일까.. 저 말의 의미가 뭘까.. 이제라도 순순히 자백을 하고 수박값을 토해내야 되는 건가.. 온갖 상념이 머리속에서 회오리 바람을 일으키고 있는데, 마당 건너 뒷간에서 수박밭 할배가 바지춤을 여미면서 나오신다.
"이것들, 나 없다고 밭에서 수박 몇통이나 따묵었냐, 이눔들아~~ "
"아부님, 소자 첨부터 횡령의 계획을 가지고 있던 것은 절대 아니옵고, 호부호형을 허하시고, 죽여 주옵소서~~~~~~~"
공돈 좋아하면 대머리 까진다.

어릴적 회상으로 향수에 젖어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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