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7월 18일 수요일
아부지
울 아부지는 이미 돌아가셨지만, 참 대단한 분이셨다.
뭐 나처럼 대단한 아들을 두셨으니 대단하신 거 맞지 뭐. ㅋㅋㅋ
평생을 소방관으로 근무하시면서 죽을 고비도 많이 넘기셨지만, 그 현장에 내가 함께했던 적은 한번도 없으니 별다른 추억은 없다. 그러나 소방관을 그만두시고 시골로 내려가 농사를 짓기 시작하면서부터는 함께했던 기억들이 많이 난다.
날도 궂으니 그 시절 얘기나 몇가지 해 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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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은 무척 가물었던 어떤 때 였던 거 같다. 우리집 논은 간척지 논이라서 농업용수 공급이 잘 되는 지역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농업용수를 공급하는 수로의 최말단 지역 근처에 있어서 가끔 윗쪽 논들이 물 대느라 물을 다 써버리면 우리 논까지 물이 안오는 경우가 있었다.
그러면 경운기를 몰고 나가 양수기를 돌려 저수지에서 물을 퍼올려야 할 때가 있다.
새벽부터 부산을 떨면서 준비를 해 가지고 경운기를 몰고 논에 가서 양수기 설치하고 물을 퍼올리고 있는데 이건 또 일이 무척 한가한 일이다. 물이야 양수기가 퍼올리는 거고 우리는그저 지켜보고 있으면 되니까.. 기계 가동시켜 놓고 아부지와 나는 저수지에 낚시대 펴놓고 앉아 있어도 된다.
한참을 그러고 있는데, 아부지가 양수기 있는 곳에 갔다 오시더니 나보고 "야, 집에좀 다녀와라. " 그러시는 거다. 사실 간척지 논들은 무척 넓어서, 집까지 가려면 경운기 타고도 30분 이상을 가야 되는 거리이다. 그 먼길을 다녀오라니..
- 왜요?
- 기름이 떨어졌어.
- 어? 기름통 가져왔잖아요.
- 그거, 기름인 줄 알고 가져온건데.. 술이었어.
이런 줸장.. 당시 우리집에서는 아부지의 취향으로 인해, 항아리에 담근 술이 끊이지 않는 집이었는데, 그 술을 잘 걸러 담아둔 통을 기름통인줄 알고 가져오다니..
결국 난 그 땡볕에 집까지 걸어가서 자전거에 기름통을 싣고 온 몸이 땀범벅이 되어서 다시 헐레벌떡 논으로 오는 수밖에 없었다. 논으로 돌아와 보니..
기름통인줄 알았던 술통의 술이 이만큼이나 줄어 있고, 아부지는 간데가 없다. 기름 넣어서 양수기 시동 다시 걸어놓고 살펴보니 저만큼 떨어진 곳에 설치된 농막에 누워서 드르렁~ 하고 계신다. 술냄새가 풀풀..
내가 술 좋아하는 건 내 책임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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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의 한겨울은 매우 한가한 시절이다. 아부지는 맨날 동네 사랑방에 가셔서 아저씨들하고 잡담도 하고 국수 추렴도 하고 화투도 치고... 집에서도 할 일이 없어서 고구마나 궈먹고 그러는 시절이다.
하루는 저녁때가 다되어서 앉아서 티비를 보는데 아부지가 방으로 들어오시더니 허리춤을 붙잡고 한쪽 발을 탈탈탈 터신다. 무슨 게다리춤을 추는 것도 아니고, 기묘한 동작을 계속 하시는 거다. 지켜보고만 있어도 웃음이 터지는 자세로...
- 뭐하시는 거에요?
내가 물어도 아무 답이 없이 그냥 계속 다리를 탈탈탈..
- 왜 그러세요?
재차 물으면서 다가가니까, 아부지 하시는 말씀..
- 내복이 올라가서 안 내려오네..
- 아니 그럼 이렇게 바지속에 손을 넣어서 끌어 내려야죠.
하면서 바지단 속에 손을 넣어 정갱이까지 올라간 내복을 끌어 내려 드렸더니, 천연덕 스럽게 하시는 말씀.
- 아, 그러면 되는 거구나.
내가 맨날 썰렁한 농담을 늘어 놓는 것은 내 책임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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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부지랑 농사일을 같이 하다 보면 욕을 많이 먹는다. 딱히 뭘 잘못해서 욕을 먹는게 아니라 워낙 성질이 급하신 탓에 습관적으로 욕을 하신다.
- 야, 이 새끼야, 좀 빨랑 하지 못해!!
뭐 이런 식이다. 그래서 맨날 엄니하고 싸우신다. 하기사 소방관 정년퇴임한 뒤, 늘그막에 그 넓은 논에 벼농사를 지으시려면 힘도 많이 들테니까 욕으로 해소할 수도 있겠다 싶다.
논에 농약을 칠 때면, 경운기에 부착된 8마력 분무기에 연결된 내압호스를 백미터씩 끌고 다니면서 약을 뿌리게 된다. 말이 쉽지, 발목까지 푹푹 빠지는 논에서 그 호스를 끌고 다니면서 농약을 뿌리는 건 진짜 하드한 운동이다. 특히나 뿌리는 사람의 발걸음에 맞춰서 논두렁에서 호스를 잘 넣어주고 나올 때는 잘 빼주고 하는 호흡이 잘 맞지 않으면 이건 완전 죽을 맛이다.
다리힘이 약해지신 아부지를 대신해서 내가 주로 농약을 뿌리곤 했는데, 아부지가 호스를 잡게 되면 영 호흡이 안 맞는다. 들어갈 때에는 호스를 너무 빨리 넣어서 호스가 꼬이기 일쑤고, 나올 때에는 너무 빨리 당겨서 내가 막 호스에 끌려가는 판이 벌어진다.
- 아, 좀 잘 보고 맞춰서 땅겨요~~~
하고 소리를 질렀더니,
- 머 이새끼야? 니가 빨리 움직여야지~
하고 버럭버럭 하신다.
날도 덥고 농약 냄새도 싫고 짜증이 풀풀 나서 분무기를 집어 던져 버리고 논에서 나와 버렸다.
- 그렇게 잘하시면 아부지가 뿌리시등가~
그랬더니 아부지가 논두렁으로 막 뛰어 오신다.
- 너 왜 이래, 농약 안 뿌려?
- 아부지가 욕을 너무 많이 해서 나 욕먹기 싫어서 농약 안 칠래요. 관둘래요.
- 뭐? 내가 언제 욕을 했다고 그래?
- 아, 방금도 막 욕했잖아요. 이새끼 저새끼.. 제가 누구 새끼겠어요? 아부지 새끼지.
- 이 자식이 생사람 잡네.. 난 원래 욕을 못하는 사람이야.
그냥 딱 잡아 떼신다.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나온다.
저 쪽에서 지켜보고 계시는 엄니에게 소리쳐 물어본다.
- 엄니~ 아부지가 지금 욕 했어요? 안했어요?
- 무슨 욕? 난 못 들었다.
이런 줸장줸장줸장.. 누가 부부 아니랄까봐...
- 아, 더러워서 빨리 장가를 가든지 해야지 원~~
궁시렁궁시렁 하면서 칠 농약은 다 치고 집으로 돌아왔더니, 해독에 좋다는 삼겹살을 궈 주시면서 슬슬 웃으신다.
- 힘들었지? ㅎㅎㅎㅎ
- 어우~ 줸장..
내가 뭔 사고 쳐놓고 시치미를 뚝 떼는 버릇이 생긴것도 내 책임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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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아부지는 결국 너무 힘이 들어서 농사를 그만두고 은퇴를 하시게 된다.
그런데 평생 힘든일을 하시던 분이 갑자기 일을 관두고 쉬게 되니까, 갑자기 몸에 이상이 오셨나 보다.
일주일 전에 정밀검진에서도 의사가 한 십년은 끄덕없이 사시겠어요~ 했었는데, 그냥 돌아가시고 말았다.
그것도 친척 잔치집 가서 잘 놀고 술도 거하게 드시고 집에 오셔서 잘 주무시고, 새벽에 일어나서 세수도 하시고 한잠 더 주무신다고 들어 가신뒤, 엄니가 꿀물이라도 드시라고 한잔 타서 들어갔더니 이미 굳어지신 거다.
원인은 심근경색 뭐 이런건데, 사람이 죽으면 다 심장이 멈추는 거 아닌가.
친지들은 정말 편하게 가셨다고 다들 부러워 하는 눈치지만 자식들은 병원한번 못 가보고 그렇게 갑자기 훌쩍, 그것도 68세라는 이른 나이에 가버리신게 못내 서운하긴 했다.
그래도 뭐 나도 거의 비슷한 신체구조 일거고, 사는 습관도 아부지랑 거의 비슷한데, 아마 나도 아주 비슷한 시점에 거의 비슷하게 세상을 떠나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것도 참 괜찮을 거 같긴 해.
그냥 자다가 조용히 가는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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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서부터 죽음을 두려워하고 어떻게 죽어야 덜 아플지 공상하던 저로서는 언제나 꿈꿔오던 죽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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