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6월 10일 일요일

6.10 기념 왕년 스토리


이런 얘기하면 왕년에 내가 뭐~ 이런 소리 하는 거 같아서 잘 안하려고 했었지만, 이제는 뭐 이런 얘기도 그냥 웃으면서 할 수 있는 상황이 온.. 왔나? 아닌가?

하여간 그래서 87년도 6월 어느날의 얘기를 읊어 보기로 한다.

위트업쓰에 올릴까 내 블로그에 올릴까 하다가 그냥 양쪽 동시 개봉으로.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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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6월 0일 날씨 맑음.

무척 긴 하루였다.

여느날과 별로 다를 바가 없이 날은 초여름의 맑은 하늘이었지만 동기들의 마음속에는 분노만 가득한게, 숨쉬는 대기 속에서도 분노가 맺혀있는 그런 느낌의 날이었다.

아침에 들린 학회실에는 벌써 친구들의 가방이 수두룩했고, 칠판에는 남겨놓은 이름만 그득히 적혀 있었다.

- 오늘은 어디냐?

- 뭐 여기저기 많아. 넌 어디로 가냐?

- 오늘은 글쎄.. 명동이나 한번 나가볼까. 솔직히 난 이런다고 뭐가 바뀔지 모르겠다. 그래도 앉아 있을 수는 없으니까 나가서 구경이나 하지 뭐.

- 넌 그게 문제라고. 맨날 꼬박꼬박 쫓아다니는 넘이 맨날 말은 아무 흥미없다는 듯이.. 그러니까 애들이 널 싫어하지.

- 내비둬라. 그렇게 살다 죽게.

나름대로 날씨 좋다고 흰색 남방에 면바지로 깨끗하게 차려입고 나왔으니, 그 난장판에 끼어서 옷이라도 버릴까 싶어 그냥 심심한 넘 하나 꼬셔서 어디 당구장 가서 하루 죽때릴까 싶기도 했지만, 강의도 몽땅 중단된 마당에 놀고 있자니 맘도 안 편하고 해서 학교앞에 나아가 버스타고 명동 거리로 나가봤다.

물론 습관적으로 가방은 학회실에 던져두고, 내 이름 역시 칠판 한 귀퉁이에 남겨 뒀다.

뭐 별일이야 있으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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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좀 일렀는지 명동 거리는 별일 없었다. 인도가 조금 북적거리긴 했고, 요소요소마다 전경들이 삼엄하게 깔려 있는 거 말고는 평일의 모습과 전혀 다를 바 없는 대도시의 번화가.

잠시 어슬렁 거리고 있자니 심심하기도 하고, 누군가 아는 넘하고 같이 올걸 그랬다 싶기도 해서 여기저기 아는 얼굴이 있나 하고 찾아보기 시작하려던 찰나, 드디어 시작이 왔다.

한번쯤 얼굴을 봤음직한 학생 하나가 하늘로 주먹을 치켜 올리며 "독재 타도 호헌 철폐"를 외치기 시작한다. 여느때와 다른 것은 보행로를 가득 메우고 있던 아저씨들이 일제히 호응을 보이며 같이 외쳐주고 있다는 거.

사실 그런 광경은 언제나 봐도 콧등이 시큰한 게,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우리가 뭔가 잘못하고 있는 건 아니구나 하는 안도감이 아닌가 모르겠다. 저봐, 어른들이, 사회인들이 우리가 하는 일에 동의를 해 주고 있잖아. 전두환이 나쁜놈 맞다고 같이 외쳐주는 거잖아.

함성이 조금씩 힘을 얻음과 동시에 한곳에 몰려 있던 학생들이 일제히 차도로 뛰어 들었다. 순간 차도는 막혀 버리고 차들은 어렵게 유턴을 해서 빠져 나가거나 옆 골목으로 스며들어가면서 그 넓은 대로에 공간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물론 그 공간은 대부분 학생으로 보이는 친구들이 채워나가고 있었고.

최전선에는 각진 얼굴과 쉰 목소리의 특유의 전문 운동권 친구들이라고 누구나 알아 볼 수 있는 한 무리가 자리를 잡고 앉아 버렸고, 일제히 구호를 선창하고 있었다. 그 뒤로 수도없이 늘어선 학생들이 선창하는 구호에 맞춰 주먹을 치켜 올리고 있었고, 그들에게 박수를 보내며 인도에 늘어선 직장인들이 넥타이를 휘날리며 같이 목소리를 맞춰주고 있었다.

저 아저씨들은 오늘 일을 작파하고 나온 거 같은데 저러다가 짤리는 거 아닐까 몰라~ 하는 내 코가 석자인데 남 걱정하기 신공을 휘날리며 슬슬 나도 대열의 맨 뒷편에 가서 자리잡고 상황을 관망하고 있었다.

울 엄마가 언제나 말씀하시길, 앞에 나서지 말라고 했거든.

대열의 앞뒤는 무장한 전경들이 가로막고 있었고 더 이상 공간이 늘어나지 않도록 애를 쓰고 있었지만 시위대는 점점 늘어만 갔고 대열은 점점 더 길어지기만 했다. 거기에 비례해 목소리는 점점 더 도심을 울리고 있었고, 빌딩 벽에 반사되어 메아리까지 치기 시작할 정도였다.

내무부장관 명의로 더 이상 시위 진압에 최루탄을 쓰지 않겠다는 공표가 바로 어제 나와서인지 사람들은 점점 더 대담해지기 시작했고, 오히려 그들을 막아서려는 경찰들이 초라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런데 그 순간, 갑자기 대열이 맨 앞에서부터 갑자기 일어서기 시작했고 통일된 구호가 아닌 아우성에 가까운 잡음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나도 모르게 튕겨 일어나서 무슨 일인가 보려고 하던 차에, 사람들이 갑자기 돌아서면서 뒤로 밀려 오는게 아닌가.

얼레.

나도 황급히 뒤로 돌아서서 밀려오는 사람들에게 자리를 내주려는데, 대열의 뒤를 막고 있던 경찰들이 갑자기 무릎을 꿇고 방독면을 꺼내 쓰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아 씨바.. 이 새끼들 최루탄 안 쏜다더니..

최루탄을 장착해서 쏘는 총들을 안들고 있다고 해서 안심을 했던게 불찰이라면 불찰일까, 갑자기 옆구리에 찬 가방에서 새까만 사과탄들을 막 꺼내더니 던지기 시작한다.

총에 끼워 발사하는 SY-44와는 달리 사과탄 역시 터지는 순간의 폭발력이 위험하기 때문에 최대한 공중으로 높이 던져서 허공에서 터지면서 흰색 최루 분말이 퍼지도록 해야 하는게 기본이다.

그런데 그걸 밀집한 군중 속에다가 마치 배구공 토스하듯이 막 슬쩍 슬쩍 던져 넣는 것이다. 저러다가 눈에라도 맞으면 실명하는데..

멀리서 날아오늘 Sy-44 탄이야 눈으로 보고 피하기라도 하지, 군중속에 파묻혀서 옆으로 한걸음 가기도 힘든 상황에서 도대체 어쩌라고 그러는지 모르겠다. 거기다가 겁도 많고 소심해서 대열의 맨 앞으로도 못가고 뒷쪽에서 얼쩡거리던 내가 졸지에 대열이 180도 뒤로 돌아를 시행하면서 얼결에 최선두가 되어 버렸고 그 앞에서 가방에서 사과 꺼내 던지듯이 마구 집어 던지는 사과탄을 피할 도리는 애초에 없던 거다.

완전 망했군.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하고 어디를 헤치고 도망가야 하나를 살펴보는데, 갑자기 바로 머리 위로 깜장 사과가 한개 날아온다.

앗, 씨발~

반사적으로 고개를 숙이며 팔을 들어 머리를 보호하는 순간 빵~ 하고 사과탄이 터지면서 온 몸에 하얀 가루를 뒤집어 썼다. 숨이 컥 막혀 오는 것을 참고 튀어 나가 전경 두어명을 확 밀쳐 버리고 옆 골목으로 튀어 달아났다. 그러는 내 뒤로 줄지어 도망오는 수많은 학생 시민들..

한참을 골목으로 달리고 있는데 누군가가 헐떡거리면서 내 어깨를 친다.

누군가 하고 돌아보니, 어떤 여학생 하나가 아무 말 없이 나한테 휴대용 티슈를 하나 내민다. 뭔가 하고 받아 들었더니, 그 여학생은 벌써 도망가 버리고 나만 어영부영 하면서 서 있는데, 도대체 이 티슈를 왜 날 준건가 하고 내 몸을 살펴 봤더니 오른쪽 옆구리부터 허리 아래까지 옷이 온통 피투성이다.

아픈 것도 모르고 잘 도망치다가 피칠갑이 되어 있는 내 몸을 발견하니까 도대체 어디가 아픈지도 모르겠는데, 온 몸이 다 아프다. 나 죽는 건가..

결국 저 멀리서 백골단 애들이 쫓아오는데, 더 이상 도망도 못 가겠어서 어딘가에 숨어야 겠다고 생각하고 두리번 거리는 데, 골목길에 있던 다방 하나가 막 철제 셔터를 내리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염치 불구하고 내리는 셔터를 막고 셔터 안으로 굴러 들어가 본다.

어두컴컴한 실내에 몇몇 사람들이 앉아서 담배를 피고 있었는데 내가 뛰어 들어가니까 내 몸에서 날리는 가루 때문에 사람들이 기침을 시작한다. 난 뭐 이젠 무감각할 수준인데..

눈물 콧물 질질 짜면서 두리번 거리고 있었더니, 여종업원이 다가오다가 내 옷에 묻은 피를 보고 비명을 지른다. 씨바..어쩌라고..

저쪽 구석에 앉아 있던 어쩐 아저씨가 벌떡 일어나더니, 나한테 다가와서 내 팔을 붙들고 이리저리 둘러 보더니, 나를 자기 자리로 끌고 간다. 그러면서 주인한테, 여기 구급약 같은거 있으면 좀 가지고 오고, 물수건도 좀 가지고 오라고 시킨다.

비명을 지르던 여종업원이 하얀 약통하고 물수건을 들고 오고, 아저씨는 내 팔을 이리저리 보고 피묻은 웃도리를 들쳐 보고 하더니 피식 웃는다.

- 뭐 크게 다친 줄 알았더니 팔만 다쳤네. 근데 왜 이렇게 피가 많이 나.

- 사과탄을 맞은거 같아요.

- 사과탄이 이렇게 쎈가?

- 바로 머리위에서 터졌거든요.

- 그걸 팔로 막았고?

- 그런거 같은데요.

- 머리 안 터진게 다행이다 야.

그러면서 대충 물 부어가며 팔에 피를 닦아 내고 보니, 오른팔꿈치에 빵꾸가 뽕뽕 뚫려 있고 거기서 아직도 피가 흘러 나오고 있다. 사과탄이 바로 머리 위에서 터지고 그걸 피하겠다고 고개를 숙이면서 오른팔로 머리를 감쌌더니 사과탄 파편이 몇개 팔꿈치에 박혀 버린 거다. 거기서 흘러내린 피가 아무 생각없이 달리던 상태에서 오른쪽 옆구리에 흘러 내렸고, 흰 옷이라 피가 더 선명하게 보인 탓에 크게 다친걸로 보였고, 그걸 본 여학생이 나한테 피라도 닦으라고 티슈를 내민거고..

아 그렇게 된거였구나.

ㅎㅎㅎ, 근데 피가 철철 흐르는데 겨우 피닦으라고 티슈를 내밀다니.

어찌되었건 간에 상황이 좀 정리되고 나니까, 갑자기 팔이 욱신거리면서 아파온다. 피도 어지간히 닦아 내고, 소독약 바르고 구급약통에 있던 붕대로 팔꿈치를 대충 감았는데 느낌이 안 좋다. 자꾸 오른팔이 부어 오르는 느낌.

- 야, 너 그래가지고 오늘은 안되겠다. 그냥 집에가라.

- 그래야겠네요.

- 집은 어디야?

- 안양이요.

- 지하철 타야겠네. 1호선인가?

- 4호선 타고 사당에서 내려서 버스 타는게 더 빨라요.

- 지하철 역에 경찰 깔려 있을텐데 너 그 꼴하고 가면 바로 잡혀 가지 않겠냐?

- 그러겠죠.

- 학교는 어디야?

- **대요.

- 참내.. 세상이 어찌 되려고 한참 공부해야 될 넘들이 다 뛰어나와 이 지랄이야.. 대머리 개새끼 같은넘..

- ......

- 니네 친구도 하나 지금 병원에 있다며.

- 예.

- 죽을 거 같다 그러더만.

- 그렇겠죠.

- 어쨌거나 내가 데려다 주마. 지하철 태워주면 되잖아.

- 고맙습니다.

- 가자.

나름대로 그 다방에 앉아 있는 동안 얼결에 대접을 받았다. 약을 가져다 준 여종업원하고 주인 아줌마까지 와서, 혀를 끌끌 차며 치료를 해 주고, 시원한 콜라까지 한잔 가져다 주고, 다른 자리에 있는 손님들까지 다 같이 이 정권을 욕하면서 학생들을 칭찬해 준다.

이렇게 사람들이 다들 바라고 있는데, 이렇게 사람들이 모두 나서서 그만 하라고 그러는데, 그래도 세상이 바뀌는 건 참 힘든 일인가 보다.

자꾸만 팔이 욱신거린다.

이름모를 아저씨가 나를 옆에 붙들고 데리고 간다. 지하철 역에 가보니 입구부터 전경들이 삼엄하게 깔려 있고, 드나드는 사람들을 막 검문을 하고 학생으로 보이는 애들은 막 연행하고 있다. 더 이상 모여드는 것을 막자는 거겠지.

그걸 보면서 아저씨가 갑자기 내 뒤통수를 딱 때린다.

- 너 이새끼,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니네 엄니가 얼마나 걱정하는 줄 알아? 이게 돈 들여서 대학 보내노니까, 데모질이나 하고 피나 철철 흘리고 다니고, 이 삼촌이 바빠 죽겠는데 너 잡으러 다녀야 겠냐?

막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면서 나를 야단치는 척 하면서 막 끌고 지하철 역으로 들어간다. 그 기세에 눌려서인지 전경들도 우리를 감히 막아 서질 못한다. 뭐 삼촌에게 잡혀 끌려가는 대학생을 막아서 뭐하겠나 싶은 심정이었을까?

나 역시, 고개 푹 숙이고 암소리 못하고 질질 끌려간다.

그렇게 지하철 역안으로 들어와 사당행 지하철을 탄다. 지하철이 도착하자 아저씨가 웃으면서 얘기한다.

- 다른건 모르겠고, 너 빨리 집에가서 집근처 병원가서 치료좀 해라. 아까 보니까 파편도 몇개 박혀 있는 거 같고, 최루탄 가루가 상처에 들어갔으니 좀 안 좋을 거 같더라.

- 고맙습니다.

- 그리고.. 니들 맘 다 이해하는데, 다치면 너만 손해야. 몸조심해라. 니가 다치면 니가 문제가 아냐. 너 바라보고 있는 부모들 심정을 니가 어찌 알겠냐.

- .....

- 잘가라.

그렇게 나는 그 아저씨의 이름 석자 물어볼 생각도 못하고 신세만 지고 헤어졌다. 아마 지금쯤 환갑은 되셨을 거 같긴 한데.. 뭐하는 사람인지도 모르고 어디 사는 사람인지도 모른다. 그저 내 기억속에 지나가던 한사람의 시민일 뿐.

그리고 사당에 도착했는데, 피투성이가 되어서 버스 타기도 그렇고 해서 택시를 잡아 탔다.

기사는 내가 대낮부터 어디서 쌈질하다가 다쳐서 온 넘인걸로 보는 듯 했다. 왼손으로 붕대감긴 오른 팔꿈치를 잡고 앉아 택시를 타고 가는데, 라디오에서는 연신 시내의 상황을 중계한다.

기사분이 탄식하듯이 뇌까린다.

- 사람들이 말야. 저렇게들 좀 그만하라 그러면 그만하는게 순리지. 권력을 한번 잡으면 거기에 무슨 꿀을 발라 놨는지 그걸 또 자기 친구한테 주려고 저렇게 고집을 피우나. 도대체 몇이나 더 죽어 나가야 포기할 건지, 참 징하네.. 징해..

듣고만 있기가 그래서 한마디 보탠다.

- 아저씨, 저도 저기 있다가 온거에요.

- 뭐? 그럼 그게 경찰한다 맞아서 다친거야?

- 사과탄에 맞았어요.

- 어.. 그럼 큰일이잖아. 병원으로 가야 되나?

- 아니, 별로 심하진 않아요. 그냥 병원가서 치료좀 받으면 될거에요. 팔 움직이잖아요.

그러면서 오른팔을 내밀어 주먹을 폈다 쥐었다 젬젬을 해보인다.

- 아, 그 사과탄이라는게 수류탄 같은거 아닌가?

- 하하, 그렇게 쎈건 아니고 그냥 안에 최루가루만 잔뜩 들어 있는 거에요.

- 아, 그래서 니가 타니까 차 안에 매운 냄새가 난 거구나. 그나마 다행인데 그래도 그렇게 피가 많이 났으니 뭐 가볍게 볼건 아니지. 어디 병원으로 데려다 줄까?

- 안양 시내에 아무데나 외과 병원에 내려 주세요.

조그만 외과병원에 도착해서 차를 세워주길래 주섬주섬 지갑을 꺼내니, 기사분이 웃으면서 얘기한다.

- 마, 나도 거기 못 나가서 미안한 사람이다. 넣어두고, 그냥 내려. 치료비도 내야 되잖아.

- 그래도 차비는 드려야죠.

- 됐다, 마, 학생이 무슨 돈이 있다고.

- 그래도.

- 아니다. 내가 맘이 안 편해서 그래. 그냥 빨리 가라.

- 고맙습니다.

결국 택시기사분에게도 신세를 진다. 도대체 내가 한게 뭐가 있다고 이런 대접을 받나 싶어 오히려 맘이 더 무거워 진다.

병원에 들어갔더니 또 옷에 묻은 핏자국 때문에 치료실이 소란스러워 지면서 순서를 바꿔 나부터 붙잡고 처치실로 데려간다.

젊은 의사는 내 팔을 붙들고 치료를 하면서, 이런 저런 얘길 물어본다. 아는 대로 답을 해 줬더니 혀를 끌끌 차면서, 그래도 활기차게 얘길한다.

- 쭉 보니까, 얘들 얼마 안 남았어요. 양보 할거에요.

- 양보하는 거로는 부족하죠. 사람이 죽었잖아요.

- 그래도 그 정도면 되는 거죠. 나도 학교 나온지 얼마 안되었지만, 대학생들만 한다고 되는 건 아니거든요. 사람들이 일제히 욕을 하잖아요. 시내에서 학생보다 직장인들이 더 많이 나왔다면서요. 이럼 된거지 뭐. 그건 그렇고, 파편이 몇개 있는 거 같은데 엑스레이 찍어보고 뺄 수 있는데 까지는 다 뺍시다. 그거 놔두면 별로 안 좋으니까.

- 그러죠.

대충 처치를 마친뒤 엑스레이를 찍고, 간호사가 웃도리를 벗어 달라고 그러더니 대충 헹궈다 주기까지 한다.

- 핏자국이 다는 안 지워져요. 집에 가서 표백한번 해야 될 거에요.

- 그런데 원래 병원에서 이렇게까지 해 줘요?

- 의사선생님이 해 주래서 해 주는 거에요. ㅎㅎ

- 고맙습니다. 민폐만 끼치네요.

- 그렇게 생각하지 말아요. 우리도 미안하니까.

기다렸다 나온 엑스레이 필름을 보니까 큰 조각이 서너개, 깨알보다 작은 조각이 대여섯개가 보인다. 우어.. 저걸 다 빼려면 완전 살을 헤집어야 되겠네..

의사는 역시나 의사답게 웃으면서 이거 보이는 건 다 빼자고 하면서 마취 해줘야 되냐고 묻는다.

- 마취 안하고 빼면 더 빨리 나아요?

- 뭐 굳이 그런건 아닌데, 해도 되고 안해도 되고.

- 참아 볼테니까 그냥 빼주세요.

결국 그렇게 호기를 부리면서 마취 주사도 안 맞고 생살을 째고 파편을 막 뺀다. 씨바.. 마취 주사 놔 달라고 그럴걸.. 졸라 아프다. 별로 깊이 박히지도 않았는데도 하나하나 건드릴 때마다 소름이 쫙쫙 끼칠 정도로 아프다. 제일 깊이 박힌건, 살을 뚫고 들어가 뼈에 흠집을 낼 정도로 박혀 있다. 그걸 끄내는데 마치 뼈를 긁어 내는 화타의 치료를 바둑 두며 참아낸 관우의 입장이 된 거 같은 기분까지 든다.

저렇게 조그만 조각들이 내 살 속에 박히다니.. 줸장..

결국 아주 작아서 빼기조차 힘든 건 포기하고, 어지간히 보이는 것은 다 빼버렸다.

- 몇개 더 있긴 한데, 너무 작아서 빼기 힘들어서 놔둬야 겠어요. 이거 좀 지나면 그냥 밀려 나올 거에요. 그리고, 독성 때문에 팔이 좀 많이 부을 거고, 한 일주일 동안은 팔 못쓰겠네. 염증 생기지 말라고 항생제 처방좀 해 줄거고, 내일하고 모레 이틀 정도는 병원와서 항생제 주사좀 맞고 붕대좀 갈고. 그러면 별 문제 없을 겁니다. 고생했어요.

- 뭐 생각보다는 덜 아프네요.

끊임없는 허세.

- ㅎㅎㅎ 안 아파서 아까 그렇게 땀을 흘렸어요? 아팠을 건데~

- 아프긴 아팠죠. ㅎㅎ

- 병원비는 내가 안 받고 싶은데, 나도 월급받는 처지라 그럴 수는 없고.. 약값만 내고 약 타가세요.

- 말씀만이라도 고맙습니다. 그냥 치료비도 내고 싶은데요.

- 아, 그건 필요없고. 당분간은 시내 나가지 말고 좀 쉬어요. 덧나면 골치 아프니까. 술담배 하지 말고.

- 잘 될진 모르겠습니다.

그러고 나서 약을 받아들고 (당시엔 의약분업 이전이다. 병원에서 약도 주던 시절이라는 뜻.) 병원을 나섰다.

집에갔더니 누나가 와 있어서, 이런 저런 사정 얘길 했더니 막 팔꿈치를 꾹꾹 찔러 본다.

- 진짜 여기에 최루탄을 맞았단 말야?

- 진짜라니까~

- 아이구~ 우리 막내가 큰 일 했네.

- 큰일은 개뿔. 아파 죽겠구만.

그 때 이미 오른팔이 붓기 시작해서 손가락까지 퉁퉁 부은 상태. 팔을 구부릴 수가 없어서 밥도 왼팔로 먹어야 되는 상태가 왔다.

- 기분인데 오늘 둘이 영화나 보러 갈까?

- 좋지.

그렇게 간만에 홀가분한 기분이 되어서 누나하고 둘이 나가 영화를 보고 놀다가 거의 자정이 다 되어서 집에 돌아왔더니..

아파트 현관문을 여는데 전화벨이 계속 울리고 있다.

- 여보세요?

- 성호니?

- 응. 누구냐?

- 너 살아있니?

- 살아있으니까 전화받지.

- 그러면 학회실에 이름을 지웠어야지.

- 아, 시내 나갔다가 좀 다쳐서 바로 집으로 와서 치료받고 지금 들어오는 길이야.

- 다쳤어? 많이? 심각해?

- 별건 아니고.. 오른팔을 좀 다쳐서 당분간 당구는 못 치겠는걸.

- 도대체 넌..

말을 채 잇지 못하고 전화를 끊어버린 친구는 신입생 시절 서로 약간 특별한 감정을 가지고 있던 사이인 어떤 여학생.

나중에 알고보니, 내가 이름 적어놓고 가방까지 놔두고 나가서 돌아오지 않자, 친구들 사이에서는 난리가 났던 거였다. 그날 우리 과에서 나 포함해서 네명이 돌아오질 않았는데, 나 말고 세명은 모두 구치소에 있는게 확인되었고, 나는 그나마 구치소에서도 또 시내의 병원에서도 발견할 수가 없어서, 친구들은 좀더 살벌한 상상을 했던 것이었다.

도심의 시위가 워낙 과격해서, 여럿이 다치고 중상을 입은 사람도 속출하고 경찰도 다수 다치는 상황에서 흔히 나타날 수 있는 극단적인 상상들..

얼결에 내가 그런 상상의 주인공이 된 상황.

그 뒤로 앉아서 계속 내가 아는 학교 친구들의 모든 전화번호로 다 전화 걸어서 내 상태를 알려 주느라 시간이 꽤 걸렸다.

그렇게 어느 초여름의 긴 하루는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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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폰 삐삐도 없던 시절, 내가 일부러 과 사무실에 전화 걸어서 내 상태를 알려 줄 수도 없었고 하니, 친구들은 다 내가 "실제로 죽었다" 라고 생각을 한 모양이다.

지금와서는 웃긴 일이지만 당시에는 진짜 심각했던 상황이다.

그런 날들이 지나고, 6.29일에는 노태우의 항복 선언이 나오고 7월 5일에는 이한열이 사망하고, 이한열 사망 이후로 또 한참 시끌벅적하고..

내 젊은 날의 한 때는 그렇게 이 사회가 가져가 버렸다.

남은 것은 오른팔을 못쓰던 몇주동안 왼손으로 당구를 쳤더니 왼손 당구가 120까지 올라가 버렸다. 지금도 아마 왼손 당구는 어지간한 사람한테 안 질걸~

당시에 내가 뭘 느꼈던지간에, 이제는 그런 모든 감정들 조차 아련한 추억속에만 살아 있을 뿐 무덤덤해져 버렸다.

그러나 이 사회는 그 때에 비해서 별로 나아지지도 않은 듯. 물론 뒤져보면 그 시절보다야 훨씬 더 발전한 상태이지만, 체감지수는 별로 다르지 않다.

어떤 면에서는 오히려, 전두환 시대보다 더 후퇴한 박정희 시대로 가고 있는게 아닌가 걱정이 될 정도로.

그렇다면 도대체 난 도대체 뭘 위해서 내 인생의 한때를 저렇게 고통스럽게 보냈던 것일까?

솔직히 고백하자면 억울하기까지 하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라는 거거든.

계속 우리가 피를 거름삼아 주지 않으면 바로 말라 죽는 거거든.

하여간 졸라 비싼 시스템이다. 민주주의라는 놈은.

그 값을 치르지 않으면 누릴 수가 없을 정도로 비싼 놈이다.












댓글 5개:

  1. 그때는 지랄탄이 없었나보군. 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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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지랄탄이 왜 없어.. 지랄탄 차량들은 다 학교앞에 가 있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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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지랄탄은 뭐에요-_-?
    그래도 물뚝횽은 세상이 변하긴 변하는 구나,를 느껴봤겠군. 하며 읽어내려오는데-_-
    안변했다니-_- 그래도 변했쟈나요-_- 사람들 인심-_-이요-_-
    저때에는 모두 한마음이었군요. 난 너무 어렸을-_-때라-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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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명동성당앞 골목길에서 백골단하고 투닥였던 적이 그 때 쯤..
    수와 진도 그 무렵 성당앞에서 노래부르고 있었던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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